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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

gyulee0220 2019. 2. 10. 19:52


 많은 이들이 명절에 친척 어르신들을 만나는 걸 꺼려한다. 평상시에는 연락도 잘 안하다가 명절에 오랜만에 봐서는 취업을 했는지 결혼은 했는지 묻곤 한다. 서로 다른 세대 간에 대화할 주제도 별로 없고 가만히 있기엔 민망하니 이런 저런 말 하는 건 이해한다. 근데 질문하는건 이해하는데 일을 추천해준다거나 혹은 누군가 소개시켜 준다고 한다는 건 정말 귀찮은 일이다. 걱정해주는 것 까지는 좋은데 걱정과 오지랖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타인에 대한 걱정이 간섭으로 변하고 이건 바로 자신에 대한 과신으로 쉽게 바뀐다.

 

 명절에만 오지라퍼들을 볼 수 있는건 아니다. 조금만 친해졌다 싶으면 넌 어떤 사람인것 같아 혹은 너라면 그럴거 같아 이런 소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오해 할 수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단순히 비난하는게 아니다. 솔직히 나도 그렇다. 누군가 친해지면 쟤는 어떨 것 같다는 거 쉽게 결론 내린다. 만난지 얼마 안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쉽게 판단하는건 나도 그렇듯 인간 모두가 그렇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언가가 의문점으로 남아있는 걸 싫어한다. 모든 결론이 나 있는 상태를 선호한다. 심리학에서 초두효과라고도 하는데 사람에 대해 처음 본 인상이 꽤 오래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결론이 뭐든 결론이 나있어야 편안함을 느낀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카톡을 보내고 전전긍긍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답변이와 나에게 선택권이 있어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는 원리와 동일하다.


 문제는 이런게 내 맘대로 가질 수 있는 것 혹은 노력 여하에 따라 가질 수 있는 거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라도 우리의 계획대로 진행되는 일이라면 인간은 그닥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이 어려운 일도 거뜬히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근데 우리의 아무리 각고의 노력을 해도 유일하게 가질 수 없는게 있는데, 그게 바로 타인의 마음이다. 타인의 마음은 개인의 영역 밖의 일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나 자신이 누군가에 속할 수 없듯이 타인의 마음또한 애초에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가 없다는 건 아마 전세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상식이다. 차라리 돈이야 노력 여하에 따라 내 소유로 만들 수 있겠지만, 타인의 마음은 쉽지가 않는다. 우리가 평상시에 종종 하는 말 중 하나가 “난 그래도 그 사람의 마음에 든거 같아”, “그 사람은 항상 내 곁에 있어 줄거야” 같은 말들이 굉장히 오만한 발언이 아닐 수가 없다. 평생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본인이 그만큼 노력해야 되는거다.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한 그 사람의 마음이 떠나는 것 역시 그사람의 맘대로 하는 것이며 만약 떠나게 되었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가 타인을 알았다는 건 인간이 가지고 있던 본성에 기반해 만들어진 완벽한 오판이다. 너무 정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필자도 이 오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절대 아니다. 자꾸 저 사람은 어떨것이다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려 때론 상처를 남들에게 주기도 하고 내가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내 맘대로 타인을 분석하고 이런 점들이 겉으로 행동으로 할때 내 자신이 참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돌아 간들 다른 행동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맨날 자유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니면서 나 자신이 타인을 정말 자유 인간으로 대하는지 조차 의문이다. 그럴 때마다 자유주의자라고 말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또 하나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또 있다. 유행이 변하듯 사람도 변한다. 유행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90년대에 청자켓 입었던 사람이 지금까지도 롱패딩을 안입고 청자켓만 고수 하지 않듯이 말이다. 근데 우린 지금 현재 이 순간의 판단으로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판단한다. 80년대 운동권에 있던 사람들 평생 학생운동만 하고 있는가? 대부분 학생 운동의 지도부 들은 2010년대엔 정권의 노른자 위에 올라 국회의원과 장관으로 활동 하고 있다. 중세시대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대부분 사람들이 형장에 이슬이 되었는데, 지금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정상으로 보이는가? 우리가 지금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불과 10년 뒤에는 충분히 혁파 될 수 있다. 빌게이츠이전에 퍼스널 컴퓨터의 존재를 생각이나 했는가? 이렇듯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 언제나 틀릴 수 있는 것이다. 진리를 깨우친다는 거 전부 허상이다. 그러니 항상 겸손하게 사는게 중요하다. 내가 모든걸 알고 있는 것 마냥 행동하지 말자. 지금 내가 아는건 방산의 일각일 뿐이다. 진리가 절대 아니다. 세상에 원리를 깨우친 사람 마냥 행동하지 말고 겸손하자.


 염세주의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인간은 진리에 다가갈 수 없다. 다가가야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같은 이유로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 실수하고 상처 받고 상처 주고 화해하고 이렇게 살아가는게 인간이다. 그래서 또 결국 타인이 날 어떻게 보는 지는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완벽하지 않으니 누군가에게 욕먹을 수도 있는거다. 그래야 내가 맘에 안드는 사람 욕할 권리도 생긴다. 그러니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너무 많은 노력을 하지 말자. 나 자신을 보자. 차라리 내 노력 여하에 따라 타인을 컨트롤 할 수 있으면 모를까.


 그래서 그런지 자꾸 요즘 나에 대해서 어떨 것 같다 말하는 사람들 보면 참 같잖아 보이기도 한다. 나 자신과 무려 30년 가까이 살아온 나도 날 잘 모르겠는데, 고작 몇일이나 몇개월 본 사람들이 나에대해 뭐라고 하는데 참 기가 찬다. 난 나 자신을 신경 쓰느라 너무 바쁜 삶을 살고 있어서 남들 얘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내가 혼자 떡볶이로 세 끼를 채우건 말건, 일 끝나고 연남동 산책을 하고 책을 읽든 말든, 파리에 가기 위해서 돈 아껴 항공권을 사든지 말든지 말이다. 내가 사는 얘기를 들어준다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게 옳든가 나쁜가 판단을 하는 건 마음속으로 하던가 해라. 내 앞에서만은 안해줬으면 좋겠다. 그거 굉장히 무례한 행위다.




PS.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 : 백예린 -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Feat. Car the Garden)

"운동권에서 정권의 노른자 위로" : Verval Jint - 1219 Epiphany

"떡볶이로 세 끼를 채우건 말건" : Heize - Shut up & Groove(Feat. D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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