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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국가를 살다보면 다수가 소수를 상대로 횡포를 부리는 일을 종종 살펴볼 수 있다. 일상생활의 단순한 합의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여러개의 선택지가 있을때 그리고 이 대안들이 상호 보완적이지 못하고 배타적이라면 더욱 다수의 선택권은 강력해진다. 우리가 맨날 먹는 점심식사에서도 이런일은 비일비재하다. 점심식사 메뉴는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하기에 무엇보다 직관적이다. 각각의 메뉴들은 애석하게도 상호 보완적이지 않다. 각자의 특색이 너무나도 뚜렷하다. 김치찌개와 카레, 햄버거는 상호 배타적 방안이다. 김치찌개를 먹고 싶은 사람이 카레를 먹고 싶기 힘들다. 만약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은 두개의 선택지가 나쁘지 않은 것이지 두 메뉴가 보완적이어서 선택한 것은 아니다. 즉, 그냥 둘다 먹고 싶은 거지 어느 한쪽이 보완적 선택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우린 점심시간마다 다수결로 투표를 진행한다. 때론, 결정 조차 어려워 사다리타기 어플을 키고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있는 점심 식사 선택 권리를 버리고 운에 맡기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오늘은 부서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고 가정하자. 나는 혼자서라도 먹는게 편하지만, 우리 팀장님이 부서 전체의 사기 진작을 위해 마련한 자리인 만큼 혼자 먹기는 다소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총 7명의 팀원이 식사 메뉴를 정하기 위해 투표를 시작했다. 자유주의 관점에서 나의 점심식사는 온전히 나의 선택이다. 점심식사 메뉴를 결정에 도덕적 문제가 걸려있거나 혹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 내 점심식사로 아프리카 난민 몇명이 굶는다는 얘기는 지나친 비약이다. 내 점심식사를 남들의 선택에 의해 조정된다는 건 자유주의자들에겐 말도 안된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다수의 선택에 따르지 않고 나 혼자 점심을 먹을 것이다. 물론 내가 이 메뉴를 선택함으로서 팀 전체의 사기를 북돋아 내가 더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행복을 얻을 수 도 있겠다. 많은 한국인들은 후자를 선택할 확률이 매우 높아 보이지만, 어쨋든 전자와 후자를 비교하여 나에게 얻을 행복을 큰 쪽으로 선택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만약 사다리타기라면 다행스럽게도 물론 그 과정이 합의로 이루어 졌다는 전제하에선 공평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리주의자가 껴있는 식사자리였다면 사다리타기 조차 힘들어 보인다. 공리주의자들은 모든사람의 행복 총 합계를 크게 많드는 쪽에 손을 들 것이다. 모든 사람마다 자신이 원하는 점심 메뉴를 선택해 얻는 행복은 동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수결로 결정해 가장 큰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 공리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물론, 이것조차 모두 같은 식사를 한다는 전제하에서 결정한 것이지 만약 이런 전제가 사라진다면 모두가 원하는 음식을 먹으러 각자 떠나야한다.
공리주의로부터 자유주의는 시작되었다. 사회 최대의 행복을 만들기 위해선 개개인의 최대 행복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 역시 공리주의자였다.
그러면 우리는 왜 다수결의 원칙을 도입했는가? 앞서 설명했듯이 맹목적 자유주의자들에게 다수결을 용납될수 없는 행위다. 하지만 모든 조직엔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점심식사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밥을 먹기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서, 부서의 사기 증진을 위해서 같이 점심을 먹게 된다. 공동의 정확히는 점심 식사의 목적이 있다면 때론 소수나 다수의 권리를 빼앗아가서라도 그 목적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내가 아닌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도 해야되며, 내가 아닌 팀장님이 좋아하는 식사를 먹기도 한다. 혹자는 이런 사고방식을 공동체 주의라고 하고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조직의 목적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전체주의 라고 부른다. 당연하게도 전체주의와 자유주의는 상극이다. 마이크 센델이 정의내린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의미도 이와 동일하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는 사회 전체의 미덕과 공동선에 대한 의미를 자유쥬의 사상가들은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 지,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박도 소개한다. 자유주의자들이 이책을 보게 된다면 자신에 사상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하게된다. 나도 이책을 보며 그랬다.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진정으로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유란 가치도 공동체 안에서 더욱 가치있기 때문에다. 사회 전체의 미덕을 강조하며 자유주의에서 이루고자 하는 가치에도 집중한다. 하지만, 물론 전체주의는 위험한 발상이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희생하며 국가와 조직을 위해 살아가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민주국가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우리는 대통령, 국회의원 모두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선발하고, 주요 논쟁 거리에 대해서 자주 투표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한다. 우리가 자유국가라고 생각하는 많은 나라에서 이미 다수결로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다면 다수결은 나쁜 제도인가? 만약 당신이 자유주의자라면 당신은 다수결을 폐지하자는 논쟁에 쉽게 찬성할 수 있는가?
나는 사상이 세상을 발전시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상만으론 부족하다. 행동이 있어야 한다. 사상만 강한사람들이 전형적으로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사람들이고 이 사람들이 결국 사기꾼이 된다. 당신이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행동하고, 실생활에서 부터 적용해보라. 점심 식사 문제처럼 사소한 부분에서도 당신의 사상적 기반에 바탕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앞선 문제의 답은 없다. 다수결을 폐지하자는 의견에 찬성을 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당신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면 남들에게 말하고 자유롭게 비판을 받으면 된다.
이책 또한 그렇다. 정의란 무엇인지 실생활에 문제에 적용해가며 계속 독자들에게 질문을 한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이유는 우리나라 8,90년대생 중에는 자유주의 사상이 깊게 박힌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이들의 아버지 세대들은 주로 민주화 운동시기와 군부 독재 시기를 거치며 자유에 대한 가치를 높게 생각했고, 이 사상을 갖춘 사람들에 사회 전반에서 활동 중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유주의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당신의 생각이 과연 옳은가? 밀이 정의한 자유는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 받는 것이다. 이 대전제를 바탕으로 센델은 자유주의자에게 말한다. 당신의 자유주의는 과연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있는가? 단순히 자신의 권리만 보장된다고 사회 전반에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가? 조직의 공동 목표를 무시한채 자유만을 주장할 수 있는가?
이 책을 보는 이유는 어쩌면 당신의 사상적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책은 사상적 궁금함을 해결해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머릿속에 질문만 가득해진다. 삶의 방향을 제시 받기위해 이 책을 읽는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문제 해결은 안될것이다. 이 책은 맹목적인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당신의 문제 해결에 수많은 자유를 준채 끝날 것이다. 자유주의자가 이 책을 본다면 끊임 없는 당신에 사상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그나마 마지막에 센델의 개인적 의견이 들어가는 있긴 하지만 이책의 주제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결국 이책은 나의 삶에 많은 질문을 남겼고, 내가 믿는 자유주의란 무엇인지 더 깊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이 세상에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하찮은 생각을 버리게 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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