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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에서의 두번째 전쟁
1940년 6월 프랑스가 항복했다. 이제 독일은 프랑스의 항구들을 차지하며 해군 병력을 대서양으로 보낼 만반의 준비를 한다. 독일군은 프랑스의 괴뢰정부인 비스 프랑스와 협정을 맺고 본격적으로 프랑스의 항구를 적극 활용해 영국을 압박한다. 프랑스의 항구들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독일의 항구인 함부르크와 브레멘에서 영국까지는 거리가 꽤 멀다. 하지만 로리앙, 보르도와 같은 프랑스 항구에선 쉽게 대서양으로 해군 병력을 보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노르웨이 나르비크에서 벌어졌던 첫번째 대서양 전쟁에 이어 두번째의 대서양 전투가 시작될 준비가 끝났다.
해군 병력이라면 영국도 매우 강했다. 이미 나르비크에서 나치 독일의 해군을 격퇴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해상에서의 전쟁은 자신있었다. 전함과 전함이 힘겨루기를 한다면 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영국 본토항공전 기간동안 영국은 자신들의 강점을 활용하기 위해 해안가에 대공 방어망을 위치시켜 해군력 보존에 힘을 썻다. 해군이 영국보다 약한 독일 입장에서는 공군 병력으로 영국의 항구들을 파괴했어야만 했다.
그리고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오는 물자가 필수적이었다. 유럽을 절반 가까이 차지한 독일의 생산속도를 영국이 따라올 수 가 없었기에, 이들에게는 미국의 지원이 필수적이었다. 소모전으로 흐른다면 독일의 승리가 뻔한 상황이다. 영국은 최대한 본토를 지키면서 미국과의 지원을 이어갔어야 했고, 독일은 어떻게든 미국의 지원을 끊어 영국을 고립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실패한 독일의 다음 목표는 저 드 넒은 대서양을 컨트롤 하는 것이었다.
카를 되니츠의 이리떼 전술
이런 영국에게 독일의 공포에 대상이 되었던 것이 있다. 바로 세계 2차대전 통틀어 가장 유명한 병기, 독일군의 잠수함 U보트 였다. U보트는 Under-Sea-Boat의 약자로 말 그대로 잠수함이다. 독일의 Bf109도 막아낸 영국은 정말 U보트 때문에 굶어 죽을 위기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독일 해군내에서 U보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 바로 독일 해군 총 사령관 카를 되니츠다. 그리고 카를 되니츠는 이리떼 전술을 활용하여 영국의 수많은 함선들을 잡아내며 영국에 공포를 줬다.
이리떼 전술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적국의 함선이 이동할 것 같은 경로를 미리 예측한다. 그리고 잠수정을 최대한 분산하여 배치 시키게 된다. 그리고 잠수함이 적국의 함선을 보게 되면 이를 지휘부에게 알린다. 그리고. 지휘부는 일정 시간을 정하고 이 안에 도달 할 수 있는 모든 잠수함을 동원하여 해당 함선을 공략한다. 기존의 잠수함 전술은 잠수정 한대가 치고 빠지는 게릴라적 전술을 채택했는데, 이리떼 전술을 잠수함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군대를 조직하여 적에게 타격을 입혔다.
기존의 게릴라 잠수함 전술에 익숙한 영국은 독일 U보트의 힘을 얕잡아 봤다. 독일의 잠수함을 손쉽게 막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영국의 보유하고 있던 레이더와 호위함이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리떼 전술 앞에서 레이더는 별 효용이 없었다. 정말 알고도 못막는 다는 말이 맞다. 호위함보다 더 큰 화력을 활용하기 때문에 숫자에서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윈스턴 처칠을 전쟁 후 정말 U보트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대서양 전쟁 당시 세력도
대서양에서의 치열한 힘겨루기
1941년에 접어들면서 전쟁의 주 무대는 지중해와 소련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탈리아가 북아프리카 지역을 침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국과 독일 역시 아프리카에 군대를 파견하며 세계 전쟁의 주 무대가 이동한다. 대서양 전투 초기 무수한 영국의 함선을 잡아내던 U보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힘을 잃게 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독일이 더이상 대서양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영국 해군이 독일 해군의 암호체계를 해독하면서 U보트의 이동 경로를 예측하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U보트의 숫자다. 이리떼 전술을 보다보면 알다 시피 전술적으로는 매우 완벽하지만, 그만큼 많은 숫자의 잠수함이 필요해야 실현 가능한 전술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물자를 보유한 독일이라도 잠수함 하나하나의 가격은 상당했기에 잠수함 생산속도가 전술에 필요한 양을 맞춰주지를 못햇다. 카를 되니츠는 300대의 U보트가 있으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300대 잠수함 구축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독일군이 보유하고 있던 운용 가능한 U보트는 40~50대 수준에 머물렀다. 그렇기에 실제로 출격 한번에 동원할 수 있는 U보트의 수는 약 10여대 남짓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영국도 U보트 파훼법을 찾아내면서 1941년을 기점으로 영국의 승기가 찾아왔다.
독일의 늦은 U보트 생산속도로 영국은 서서히 대서양의 주도권을 가져온다. 이미 노르웨이 지역에서 승리를 쟁취한 이들은 독일의 주력 전함인 비스마르크와, 샤른호르스트 등 대한 전함들을 잡아내며 독일을 압박했다. 대서양 지역에서 U보트 생산이 필수적이었지만 독일은 이미 소련과 북아프리카 전선을 신경쓰기에도 벅찼다. 영국 공군의 협력하에 완전히 제공권을 장악한 영국은 독일 해군을 괴멸 직전까지 몰아갔다.
U보트를 감시하는 영국 해병
독일에게 다시 찾아온 기회
1941년 말,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미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히틀러가 그렇게 바라지 않았던 고립 상태에 빠진것이다. 미국이 전함을 이끌고 북극해 연안으로 돌아 온다면 전략적 요충지인 노르웨이를 잃을 위기에 빠진 것이다. 히틀러는 서둘러 북극해에 U보트를 파견해 연합군간의 물자 수송을 막았다. 특히나 북유럽의 경우 소련과 미국의 협공을 당하기 좋은 지역이었기에 히틀러는 북유럽 방면에 많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1941년 12월 11일 히틀러는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그는 이듬해 미국에 대한 공습을 준비한다. 히틀러는 카를 되니츠에게 미국 동부연안까지 왕복으로 갈 수 있을 만큼의 넉넉한 연료를 지급하면서 미국 함선을 격침시키라는 작전을 내린다. 되니츠는 총 5기의 소규모 잠수함 편대를 구성해 미국 동부 연안으로 이동한다. U보트에 대한 면역이 되어있던 영국과 달리 미국은 생전 처음보는 독일의 비밀 병기에 크게 당황한다. 미국은 이렇다할 반격도 못한 채 겨우 5기의 잠수함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무려 미국 함선 25척이 무너졌다. 톤수로는 무려 17만톤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이 것이라 바로 히틀러의 북치기 작전(Operation Drumbeat) 이 시기부터 U보트의 활약이 다시 거세졌다.
미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원래 미국은 자신들이 참전만 하면 연합국이 승리할 것이라 자부했다. 하지만, 유럽의 전쟁에 끼어들지 말자는 여론에 밀려 중립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영국이 히틀러가 동유럽 국가들을 합병할 때 수수방관하고 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시의 각국의 기술 발전 속도는 늘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은 지금껏 보지 못한 U보트 이리떼 전술에 당하며 초기 대서양의 주도권을 독일에게 내준다.
독일군 암호화 기계, 애니그마
독일군의 암호체계, 애니그마
세계 1차대전에서 독일군이 패한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연합국이 독일군의 암호 체계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 역시 이 점을 잘 알았고, 이전과 다른 방식의 암호체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독일군의 신형 암호체계 애니그마였다. 애니그마 자판은 여느 다른 암호화 장치와 마찬가지로 누르는 글자와 전송되는 글자가 서로 다른 암호화 체계였다. 기존보다 더욱 복잡한 방식으로 내부 기어가 돌아갔다. 독일군은 애니그마를 사용하기 위해 한달에 한번씩 지급되는 암호책이 반드시 필요했다.
개전 직전 독일이 자국을 침략할 것이 불보듯 뻔한 폴란드는 애니그마 해독에 사활을 걸었다. 폴란드는 유럽에 있는 천재 수학자들을 모집해 간신히 애니그마 해독에 성공한다. 하지만 독일 역시 애니그마 체계가 뚫렸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기존의 방식보다 바퀴를 늘려 신형 애니그마를 재배포했고, 결국 폴란드는 독일에게 패한다. 영국과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영국 역시 애니그마 해독에 총력을 기울인다. 이 때, 활약한 사람이 그 유명한 앨런 튜링이다. 영국은 앨런 튜링을 필두로한 암호 해독팀을 구성해 신형 애니그마를 해독해 낸다.
독일 역시 영국이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작전을 파악하자 자신들의 암호체계가 또 한번 뚫렸음을 직감한다. 독일은 다시한번 암호화 체계를 만드니 이것이 애니그마를 변형한 트리톤이다. 트리톤을 도입한 시기에 바로 앞서 언급한 미국의 참전이 같이 엮이게 된다. 트리톤과 U보트의 활약으로 독일은 다시 한번 대서양의 우위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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