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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p Calm and Carry On
독일군의 런던 공습은 꽤나 무서웠다. 히틀러는 9월 21일을 바다사자 작전 수행일로 선언했다. 이를 위해 9월 17일 까지는 런던의 공군 병력을 완전히 초토화 시키기를 바랬다. 9월초와 중순을 거쳐 런던은 완전히 폐허로 변해가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런던 대공습을 받은 영국은 당황했다. 처칠은 시민들을 독려했다. 영국 시민들은 포격에 있는 날 지하철에 몸을 숨기고 대피했다. 그리고 기간 시설들을 유지하기 위해 이번엔 조종사가 아닌 소방관들이 런던 곳곳을 돌아다니며 방화 작업에 나섰다. 괴링은 영국 왕국까지 폭격을 지시했고, 영국의 대응이 미흡한 것을 보곤 매우 흡족하며 영국 공군의 괴멸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런던 시민들의 항전 의지는 대단했다. 시민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직접 발벗고 나서며 영국과의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 폭격에 있는 날 지하에 들어가 몸을 숨기고, 피해가 극심한 지역엔 직접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작업을 이어갔다. 처칠도 라디오와 TV 방송을 통해 영국 시민들을 독려했다. 이에 질세라 11비행단의 병사들은 빠르게 비행장을 복구하며 독일 공군의 방어에 대응을 준비한다. 9월 초 국지적인 영국의 반격이 있었지만, 큰 성과를 내진 못했다. 그래도 이들은 최대한 많은 독일군 Bf 109 폭격기를 잡아내 런던의 피해를 최소화 시켰다.
그리고 서서히 힘을 모은 영국군은 이제 반격의 준비에 나섰다.
배틀 오브 브리튼 데이
영국 공군의 회복을 지켜본 휴 다우딩은 이제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11, 12 전투 비행단의 비행기를 최대치로 긁어 모아 독일과의 항전을 준비했다. 괴링 역시 바다사자 작전 개시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총 공세가 필요했다. 히틀러가 말한 9월 17일의 공군 완전 괴멸이 눈앞으로 다가왔고, 괴링은 9월 15일 총 공세를 지시했다. 이들의 목표는 딱 하나 영국의 모든 전투기를 잡아내는 것이었다.
9월 15일 아침이 되자 독일군 항공기가 일제히 런던으로 향했다. 독일은 500여대의 폭격기와 620대의 전투기를 동원했다. 영국 본토 항공전 개시 이래 최대의 규모 였다. 이 소식을 들은 다우딩은 두 비행단에 연락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전투기를 가용해 이들을 막아 낼 것을 지시했다. 전투 전 처칠은 키스 파크에게 이번 공습에 사용되고 남은 예비 병력의 규모를 물어봤다. 키스 파크의 대답은 'Zero' 였다. 영국은 이날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항공기를 동원해 독일의 최대 공습을 막은 것이다. 만약 실패했다면 괴링이 원한 대로 영국의 항공기를 모두 잡아 낼 수 있는 기회 였던 것이다.
영국의 전투기는 약 630여대의 규모 였고, 독일 공습대가 런던에 도달하기 전에 이들은 막아섰다. 괴링 역시 영국의 수많은 비행기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이제 기회가 왔다며 영국 공군과의 마지막 전면전을 지시한다. 독일의 전투기는 영국의 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해 항공에서 스핏파이어와 싸웠고, 폭격기는 런던으로 향하며 마지막 공습을 준비해다.
빅토리아 앰벵크망
스핏파이어 VS BF 109
영국 상공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스핏파이어와 Bf109의 전투로 압축된다. 아침에 시작된 이 전투는 해가 질때까지 이어졌다. 독일 군의 치명적은 문제는 항속 거리였다. 공군 전투의 엄청 많은 비행기가 부딪힌다고 많은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 전투기가 워낙 값이 비쌀 뿐더러 3차원의 상공에서 적 전투기를 맞추기란 쉽지 않다. 이에 반해 전투기들은 많은 양의 연료를 필요로 한다. 비행 시간이 그리 길지 못하다. 지속적으로 전투를 유지하기 위해선 연료 공급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영국 상공이다. 영국 비행기는 짧은 항속거리로 전투기의 연료를 공급할 수 있는데 반해 독일 전투기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는 자연스레 전투 지속시간의 차이로 나타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기세는 영국쪽으로 기울게 된다.
bf 109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 데 바로 작은 연료량으로 인해 발생된 낮은 체공시간이었다. 유럽 본토에서의 전쟁에서는 이런 문제점들이 강력한 화력 덕분에 상쇄되었다. 하지만 바다를 건너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는 항속거리의 저하가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발생 된 것이다. 결국 이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 영국이 승기를 잡았고, 9월 15일 영국은 독일을 상대로 대승을 한다. 영국이 29기의 전투기의 손실을 본 반면 영국은 무려 43기의 폭격기와 18기의 전투기를 잃었다. 승리를 낙담하던 괴링은 패전에 분노했다. 이 날은 영국 본토 항공전의 최대 규모 전쟁이기도 하면서 서부전선의 전환점이 되었다. 히틀러의 화력에 유린당하기만 한 서부 전선이 처음으로 히틀러에 대한 항전 의사를 내비친 날이었다.
9월 15일 영국과 윈스턴 처칠은 역사적인 승리를 거뒀고, 이 날을 '배틀 오브 브리튼 데이'라고 명명했다.
독일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지하철로 피신한 영국 국민
처칠, 히틀러에게 굴욕을 선사하다.
9월 17일 히틀러는 룬트슈테트에게 바다사자 작전을 무기한 연기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영국 본토 항공전은 막을 내리게 된다. 물론 영국 침공에 대한 꿈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라서 이후로도 국지적인 전투는 계속 발생했다. 하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영국에 집중되어 있었던 히틀러의 관심은 이제 다른 지역으로 돌아간다.
히틀러가 영국을 반쯤 포기하게 된 정확한 계기를 알 수는 었지만, 몇가지 예상 되는 부분은 있다. 우선 소련과의 전쟁에 대비해야했다. 히틀러가 영국을 침공하게 된 이유는 양면전쟁의 두려움이었다. 이 말은 결국 전쟁을 일으킨 애초의 목표가 영국이 아닌 소련이었다. 독소 불가침 조약과 폴란드 침공으로 동부 전선을 안정시키고 서부로 화력을 돌려다. 이후 노르웨이-베네룩스 3국-프랑스-영국을 순차적으로 잡아내 서부 전선을 없애고 다시 동부 전선으로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 히틀러의 목표였다. 하지만, 영국의 결사항전으로 서부전선은 무너지지 않았고, 히틀러는 그렇게 싫어했던 양면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리고 영국은 수비하기 좋은 지역이지 반격에 나시기에 좋은 지역은 아니다. 게다가 독일이 노르웨이와 프랑스까지 장악하고 있는 마당에 영국이 대대적으로 본토 상륙작전을 지시할 여력은 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데 굳이 2:1의 손실 비를 보이고 있는 영국 본토 항공전을 더이상 지속할 이유가 없었다.
처칠은 레벤스라움 건설을 향해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던 히틀러를 완벽하게 무릎을 꿀리며 영국을 지켜냈다.
영국군 전시 포스터
지속되는 전쟁
물론 바다사자 작전의 포기가 전쟁의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괴링은 여전히 영국 상륙의 목표를 놓지 않았다. 영국의 방공망은 뛰어났지만 야간에는 병사들의 시야가 제한되어 위치가 발각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고 야간 침공을 계획했지만, 이 마저도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11월 14일 영국 코번트리에서 대대적인 폭격을 지시하며 도시 하나를 완전히 백지화 시키기도 했다. 코벤트리에는 당시 영국군의 군수 공장이 몰려 있었다. 야간 공습으로 재미를 보고 있던 독일군은 코벤트리에 대대적인 공습을 가해 영국군에게 큰 타격을 줬다. 그리고 1940년 12월 29일엔 런던에 대대적은 야간 폭격을 감행했다. 독일군은 런던에 대한 대규모 공습보다는 지속되는 국지전을 야기시켜 국민들을 지속적인 긴장상태로 만들어 항전의사를 꺽는 작전으로 바꾼 것이었다.
독일의 산발적인 야간 공습은 1941년 3월까지 이어졌다. 독일이 1941년 동부전선으로 병력을 대대적으로 옮기면서 그제서야 영국에 대한 항전도 끝을 보이게 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독일의 대패였지만, 영국군은 시민 10만명을 잃었다. 영국의 승리는 전략적으로 매우 훌륭한 역할을 했지만, 국가 자체로서의 손실을 보자면 영국의 피해규모와 독일의 피해 규모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영국이 독일의 공습을 잘 막아낸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전의 전투들은 몇만명의 병력이 서로 맞붙은것에 비해 실질적으로 전투를 수행한 인원이 1000여명 남짓이라는 아주 특이한 전투다. 항공에서 양측 조종사들이 서로 맞붙은 것이 전부다. 하지만, 조종사들의 전투를 위해서 고장난 비행기를 수리하고, 조종사들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비행장을 지키는 모든 병력을 합한다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한번의 비행을 위해 육해공군 병력 몇백명이 동원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독일의 본토 공습을 막아낸 영국. 영국 상륙을 포기한 독일은 이제 방향을 바꿔 영국을 포위하기로 한다. 프랑스와 노르웨이 침공으로 영국의 남,동,북부를 막아냈으니 이제 서부를 막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영국은 고립되지 않기 위해 저 대서양 너머의 연합국은 미국에서 손을 뻗는다. 이제 미국과 협조하려는 영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독일간의 대서양에서의 2라운드 매치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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