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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폰 룬트슈테트



아르덴 공세의 시작


  1940년 5월 10일 새벽 5시 드디어 독일군이 국경을 넘어 벨기에로의 진격을 시작했다. 독일군은 프랑스에 혼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B집단군을 전날부터 운용하며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를 공략했다. B집단군에는 다수의 공수부대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들을 활용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적극적으로 군대를 파견해 방어 지점에 대한 혼란을 야기했다.


  A집단군도 벨기에로 출발했는데, 문제는 대규모 병력이 좁은 길목을 지나가면서 발생하는 엄청난 교통체증이었다. 구데리안의 적극적인 주장으로 독일 군은 기갑 부대를 동원했지만, 넓은 부피를 차지하는 전차의 특성상 빠른 벨기에 진격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기갑 병력을 좋게 보지 않고 있던 룬트슈테트는 기갑 병력에 대한 개선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게다가 벨기에와 프랑스 군은 지속적으로 독일 군의 경로에 지뢰를 설치해 그들의 공세를 적극적으로 방어했다. 아르덴으로 빠르게 돌입해야할 A집단군의 속도가 예상보다 지체되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골든타임을 프랑스가 또 한번 놓치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독일 공군 병력의 두려움이었다. 스페인 전쟁과 노르웨이 전역에서 독일 공군의 위험함을 한차례 경험해 보았기에 그들은 섣불리 A집단군에 폭격을 가하지 않았다. 비행기를 출격시키면 되려 독일 공국의 표적이 될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쓸데없는 걱정은 독일 A집단군의 느릿느릿한 아르덴 공세에 대한 시간을 벌어주게 된다.



벨기에 국경에 투입되는 독일군 전차



B집단군의 활약


  혼돈의 A집단군과 달리 B집단군은 빠르게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헤이그와 로테르담을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제압한 뒤, 공군 병력을 동원하여 빠르게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의 제공권을 장악했다. 프랑스 육군이 딜 계획에 의해 바로 지원을 왔으나 독일 공군의 활약으로 저지했다. 결국 네덜란드는 5월 13일 전쟁이 발발한지 나흘만에 독일군에 의해 수복되고 영국에 망명 정부를 세운다. 


  B집단군에게 제공권을 완전히 뺏긴 벨기에와 프랑스는 이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독일은 이미 전쟁을 통해 제공권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양국은 전혀 몰랐다. 독일 공군은 정찰기를 활용해 프랑스 공항의 위치를 완전히 파악하고 폭격을 가하며 완벽한 전략적 우위를 취한다. 그 사이 벨기에 북부지역으로 제16기갑군단이 통과할 완벽한 길이 열리면서 도박성 짙어 보였던 만슈타인의 낫질 작전이 현실화 되고 있었다. 


  프랑스도 서둘러 딜 계획에 의거해 마스강을 사수하기 위해 벨기에로 출격했다. 마스강 유역에는 벨기에 군대가 수비하기 어렵다고 평가되는 지역인 ‘장블루의 간격’이 존재 했다. 프랑스 군은 이 지역이 벨기에 사수의 핵심이라고 파악하고 대다수의 군대를 장블루로 돌린다. 결국 독일 16기갑군단과 프랑스의 군대가 장블루의 간격에서 첫 전투를 펼친다. 프랑스 군들은 화력이 강한 독일 전차 앞에 많은 병력 손실을 했지만 전술적인 승리는 가져왔다 B집단군의 장블루 간격 돌파를 저지하며 아직까진 마스 강 사수에 성공하고는 있었다.



도하를 시작한 독일군



스당 돌파


  프랑스가 마스 강 수비에 힘쓰는 사이 독일 A집단군이 아르덴 고원에 도달했다. 여전히 마스강 B집단군이 주공이라고 생각한 프랑스는 자신들이 마스 강을 막고 있으면 비교적 수비가 쉬운 아르덴 지역을 벨기에 군이 막아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독일 19기갑단장을 이끌던 하인츠 구데리안은 병사들과 장교들에게 사기를 불어넣고 각성제도 투여하며 빠른 속도로 아르덴에 도달했다. 만슈타인의 작전 이해도가 높던 그였기에 빠른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구데리안의 빠른 속도는 놀라웠다. 마르틀랑주 지역을 순식간에 점령하고 독일에서 출발한지 단 3일만에 스당지역에 도달했다. 구데리안은 단 하나의 기갑 군단을 이끌고 홀로 벨기에를 통과해 프랑스 국경지대에 도달한 것이다.


  5월 13일 독일 공군의 지원을 시작으로 스당 공세가 시작된다. 독일 군대는 빠른 속도로 마스강 도하를 시도 했고, 마스강 건너 프랑스 지역으로 서서히 자신들의 군대를 보냈다. 구데리안은 스당을 수비하는 프랑스 55보병사단의 포병 부대가 도하에 있어 가장 큰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고 독일 공군으로 하여금 이들의 무력화를 지시했다. 이들은 프랑스 병력이 큰 손실을 입히지는 못했지만 앞서 구데리안이 걱정한 포병 화기 파괴에는 완벽히 성공하며 구데리안의 걱정을 덜었다. 연합군은 그제서야 뫼즈강 수비를 위해 다리 파괴를 지시하지만 이것 역시 독일 공군의 방해로 실패한다. 


  그리고 스당을 수비하던 프랑스 55보병사단에 엄청난 악재가 발생하게 된다. 보병사단 병사 한명이 불송지역에 독일 기갑부대가 도달 했다는 보고를 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병사들이 불송 지역에서 포격 장면을 목격했다는 정보가 전해지자 55보병사단은 공포에 떨며 와해되어 퇴각하게 된다. 하지만 후일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 독일은 기갑병력을 파견한 적이 없었다. 결국 미스터리 한 사건의 발생으로 스당을 지역하는 프랑스 군대가 와해된다. 많은 사람들은 공포심으로 인한 집단 환각 증세라고 보고 있으나 여러모로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그렇게 느리고 느렸던 A집단군의 아르덴 공세는 구데리안 단 한사람의 능력으로 점차 성공확률을 높여갔다. 실제로 구데리안의 속도는 실제 전차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를 앞질렀다고 한다. 히틀러도 처음 구데리안의 진격을 보고 거짓이 아니냐고 말했을 정도 였다. 독일군의 걱정은 오히려 구데리안의 빠른 속도를 다른 군대가 받쳐줄 수 있는지 여부였다.



벨기에 대공포


느린 독일군, 더 느린 프랑스군


  구데리안을 제외한 독일군의 돌파는 형편없었다. 군대 운영에 있어서 가장 위엄한 시점이 도하 시점이다. 도하를 진행하고 있을 시간에 적의 공격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도하 작전의 성공 여부는 빠른 속도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아르덴 공세가 예상보다 많이 늦어졌기 때문에 프랑스에게 기회는 분명이 있었다. 마스강의 진격이 느렸던 독일군으었지만 프랑스 군의 대응은 더 느렸다. 


  도하 작전을 진행중이었던 구데리안의 병사들에게 반격을 가하라는 명령이 프랑스 육군 55보병사단장 라퐁텐에게 떨어졌다. 하지만 라퐁텐 사단장은 명령을 하달 받고 무려 8시간 뒤어 역습 작전을 수행한다. 그 사이 구데리안의 병력은 전쟁에 대한 완벽한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프랑스 육군 대장 알퐁스 조르주는 라퐁텐의 느린 역습에 노발대발했으나 이미 구데리안의 돌파는 성공했다. 


  프랑스의 느린 역습은 그들의 낙후된 전술 교리에 기반된 행동이다. 구데리안과 만슈타인은 이미 공군력의 중요성과 빠른 속도가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참호전의 충격이 잔상에 남은 프랑스 육군 수뇌부는 여전히 느리지만 신중한 방어를 고수하고 있었다. 확실하고 신중한 역습이 전쟁의 승리를 가져온다는 착각이었다.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를 잇는 마스 강



유령 부대의 마스 강 돌파


  구데리안이 도하에 성공하고 스당을 놓고 엎치락 뒤치락 할 무력 독일 군에 또 한명의 영웅이 등장한다. 바로 에르빈 롬멜이었다. 구데리안이 공세를 하는 시기에 롬멜은 더욱더 서쪽 방향으로 달렸다. 마스강을 넘어 옹에라는 마을로 진격했다. 롬멜의 상관은 구데리안과 롬멜의 간격이 벌어질 것을 두려워 하여 그에게 더이상 진격하지 말라고 지시하는데 롬멜은 말을 듣지 않고 더욱더 서쪽으로 달려갔다. 자신의 상관인 헤르만 호트와의 통신망이 끊어 졌지만 그는 기만 전술을 동원해 프랑스 보병사단을 무력화 시켰다. 구데리안은 그의 활약에 더욱더 격려했다.


  롬멜의 무서운 속도는 프랑스 군에게 공포였다. 특히 롬멜의 신출귀몰한 속도에 기겁한 이들은 그의 부대에 유령 부대라는 별칭을 붙였다. 롬멜의 유령부대는 아헨과 랑드르시까지 도달했고 이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프랑스 군의 항복을 받아낸다. 이 당시 롬멜이 포획한 프랑스 병사만 만명이 넘었다. 겨우 한개 기갑사단을 이끌고 있었던 사단장의 놀라운 성과였다. 육군 수뇌부는 롬멜의 놀라운 성과로 인해 그에게 철십자 훈장을 부여한다. 


  5월 17일 구데리안이 스당 지역을 완벽하게 손에 넣게 되면서 이제 더이상 프랑스는 마지노선과 딜 강을 사수해야할 이유가 사라졌다. 이젠 자칫하면 독일의 대군의 프랑스 국격을 넘어 순식간에 파리를 포위할 기세였다. 프랑스 총리 폴 레노는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에게 연락하여 SOS를 요청한다.



5월 16일까지의 독일군의 진군



프랑스 최후의 반격


  5월 16일 윈스턴 처칠이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처칠이 도착한 파리의 광경은 처참했다. 폴 레노는 이미 패배를 직감했고, 프랑스 사령관들은 사기를 완전 잃었다. 처칠은 프랑스 사령관 모리스 사령관에게 현 상황을 타개할 만한 방법에 대해 물어봤으나, 가믈랭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 대답을 들은 처칠은 더이상 프랑스가 전쟁으로 부터 버틸 힘이 없다고 느꼈고, 훗날 전쟁 기간에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말이라고 전했다. 


  난세에 항상 영웅이 나온다고 했던가. 프랑스에 전부 바보들만 모여있던 것은 아니었다. 구데리안의 돌파를 저지하기 위해 프랑스 장군 한명이 나서선다. 일개 준장에 불과했던 샤를 드 골이라는 그냥 장군 한명이 독일 제19기갑군단의 후위를 물게 된다. 이 역습은 제대로 먹혀 구데리안의 사령부를 불과 2Km 남겨둔 지점까지 파고들었다. 시간적으로나 위치적으로나 완벽했던 역습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구데리안의 한 기갑 사단이 눈치를 채고 공군 병력을 활용해 이를 막아서며 구데리안은 간신히 한 숨을 돌리게 된다. 만일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전쟁의 판도를 바꿀지도 모를 완벽한 전술적 행동이었다. 일개 준장 샤를 드 골의 놀라운 활약이었다.


  A집단군이 나아갈 수록 B 집단군도 자연스럽게 탄력을 받았다. 이제 딜 방어선을 돌파한 B집단군은 프랑스 영토를 크게 돌아 파리를 포위하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릴 수 있었다. B 집단군과의 전쟁에서 프랑스는 독일보다 훨씬 훌륭한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전차 운용의 핵심은 넓은 지역에 병렬로 전차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전차에 대한 오랜 연구를 했던 독일군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프랑스 군인들은 전차를 일렬 종대로 세우며 독일 전차의 표적이되었다. 이들은 독일군 전차에 자연스럽게 위험을 노출 했다.


 그리고 5월 19일 프랑스 총사령관 모리스 가믈랭은 경질되었다. 신임 사령관에는 1차대전 참모장 출신 막심 베이강이 대신했다. 프랑스는 이제 자신들의 국경을 넘어 파리로 달려드는 독일군을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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