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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시프 스탈린
소련의 참전
브주라 전쟁이 한창이던 1939년 9월 17일, 폴란드는 자신들과 우호 관계라고 믿었던 소련에게 뒷통수를 맞는다. 스탈린은 원래 나치 군이 바르샤바를 점령한 시점에 폴란드로 공격해 들어올 계획이었는데, 바르샤바 공략이 예상보다 오래 걸리자 곧바로 폴란드 국경을 넘어 공격을 시작했다. 폴란드는 소련이 우호 세력이라고 믿었던 것 만큼 동부 지역에 병사들을 전부 독일을 막기 위해 서부로 돌려놓은 상태였다.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한다는 명분을 바로 국가 붕괴가 눈앞인 폴란드에 거주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주민들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이미 히틀러와 독소 불가침 조약을 통해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시 소련도 폴란드를 공격하고 분할 통치 하는 것으로 협상이 완료된 상황이었다.
폴란드로 진주하는 소련 기병대
소련군의 폴란드 진주
소련은 텅텅 빈 폴란드 동부 지역에 무혈 입성했다. 소련군은 크게 벨라루스 전선군과 우크라이나 전선군으로 나눠져 소련을 공략했다. 벨라루스 군은 미하일 코발료프가 우크라이나 군은 세묜 티모센코가 사령관으로 부대를 지휘했다. 사실상 소련이 참전하게 되는 순간부터 폴란드의 패망은 예견되어 있었다. 폴란드 군은 이미 독일과의 혈전으로 힘을 많이 쏟은 상태였기에 소련은 막을 힘이 전혀 없었다.
19일 빌노가, 24일 그로드노가 차례로 소련군의 손에 떨어졌다. 게다가 독일 병력을 막기 위해 사용되던 폴란드 동부의 공항을 소련에게 빼앗기는 상황에 놓였다. 사실 폴란드 동부 지역은 산업 시설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 바르샤바를 빼앗긴다 할지라도 동부지역에서 눌러 앉으면 독일도 쉽사리 폴란드 전역을 집어 삼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히틀러 역시 폴란드 침공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계획한게 아니라 군수 물자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상태였다. 만일 소련군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전쟁 양상이 정 반대로 뒤바뀔 수 있었다.
폴란드 정부는 여차하면 바르샤바를 버리고 동부지역의 산업과 루마니아 및 서구권의 공조로 최대한 버티면서 나치 독일의 공세가 끝나기를 바랬고, 충분히 가능성 있던 시나리오 였다. 하지만, 소련의 참전은 폴란드의 모든 계획을 수포로 돌렸다.
소련의 참전
바르샤바 전투
브주라를 독일군에게 빼앗기고 동부 지역을 소련에게 빼앗기게 되자 폴란드는 루마니아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포기하고 프랑스로 망명을 시도하기로 한다. 사실 이미 폴란드 정부는 루마니아로 망명을 요청했는데, 루마니아 정부는 친독계 성향을 내비치고 있었다. 루마니아 정부는 망명을 온 폴란드 정부 인사들을 억류하게 된다.
이제 폴란드 군은 프랑스로 도피를 할 수 있도록 나치 독일의 바르샤바 공략 시점을 늦춰야만 했다. 독일 역시 이 점을 잘 알았기에 9월 23일 독일 전투기 1150기가 바르샤바 전역에 대한 공습을 퍼부었다. 이 폭격은 몇일간 지속되었다. 특히 9월 25일 바르샤바엔 엄청난 공습이 이루어졌고 이 날을 ‘검은 월요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바르샤바를 지키고 있던 폴란드 요새들이 하나 씩 독일의 손으로 넘어갔다. 특히 이중 바르샤바 북부에 위치하여 발트 해 지역과 연결되어 있던 모들린 요새가 독일군에 넘어가자 바르샤바 군 사령관 율리우쉬 롬멜 장군은 독일군과 항복 협상에 들어갔다.
빌노에 입성하는 소련군
다시한번 서구의 배신을 당하다
소련,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루마니아에 차례차례 배신당한 폴란드의 유일한 희망은 프랑스였다. 독일은 이미 탄약와 미사일은 모두 소모한 상태였기에 바르샤뱌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던 폴란드를 위해 독일의 서부 전선을 공략한다면, 충분히 폴란드를 구원하게 된다. 실제로 폴란드와 프랑스 사이에는 한쪽이라도 공격을 당하게 된다면 다른 나라 역시 전쟁에 참여하기로 약속을 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세계 1차 대전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전쟁에 대한 공포, 내부 여론의 반발 2차대전 역시 1차대전과 마찬가지로 참호전 양상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는 오판, 독일 군에대한 막연한 무서움 등이 서로 맞물려 프랑스는 군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협약에 의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지만, 실제로 군사행동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지전 하나 안일어나고 정말 선전포고만 했다.
바르샤바에서 독일군을 사열하는 히틀러
폴란드의 항복
1939년 9월 28일 폴란드 군은 나치 독일에 항복하기로 한다. 독일군이 처음 폴란드 국경을 넘은지 약 한달만에 나치의 폴란드 침공을 막을 내리게 된다. 살아남은 폴란드 사람들은 나치 독일의 포로로 전락한다. 일부 나치에 복종하지 않은 폴란드 정부인사와 군부대는 루마니아와 프랑스로 도망을 쳤고, 프랑스에 망명 정부를 세워 자유 폴란드군으로 활동한다. 10월 2일에는 폴란드 중부 지역 코츠크에서 전투가 다시 벌어지기도 했으나, 결국 독일에게 패하게 된다.
10월 5일 아돌프 히틀러가 바르샤바를 방문해 독일군을 사열하는 것으로 폴란드의 저항은 끝이난다. 침공은 종료가 되었지만, 폴란드의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미 전쟁으로 폴란드인 20만명이 사망했다. 게다가 나치 독일은 폴란드의 저항을 막기 위해 수많은 지식인, 지도층을 학살했다. 나치는 유대인과 체코인 정신질환자들도 이 시기에 같이 고문과 학살을 진행했다. 이 때 학살당한 인원만 무려 6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래저래 역사적으로 폴란드와 독일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소련군 총사령관,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루프트바페의 활약
폴란드 침공의 일등 공신은 바로 나치 독일의 공군인 루프트바페였다. 당시 루프트바페를 이끈 것은 알베르트 케셀링이었다. 케셀링은 세계 1차대전 조종사 출신이 공군 사령권이었는데, 브라우히치의 뒤를 이어 육군 원수에 오른 페도어 폰 보크의 지휘를 자진해서 받을 만큼 매우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공군 사령관이기 때문에 보크의 명령을 듣지 않아도 되는 위치였다.
케셀링이 이끄는 루프트바페는 폴란드 전투가 개전하자 바르샤바에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당시 폴란드 공군의 주력 전투기는 ‘페-에데나시체’ PZL P.11이었다. 1920년대에 설계된 이 비행기는 폴란드에서 제작된 수준 높은 전투기로 많은 나라에 수출하고 있었던 수준급 전투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구식화 되었고, 독일 공군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독일군 항공기, BF109
반면 독일의 항공사 메서슈미트는 전쟁을 대비하여 Bf109와 Bf110 두 전투기를 제작하게 된다. 이 두 기종은 나치의 주력 전투기로 사용된다. 이미 스패인 내전에서 테스트를 완료한 Bf109는 폴란드 침공에서 맹활약을 한다. 해당 기종은 더 많은 병사들은 제거하는 데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개발되었다. 앞으로 벌어진 프랑스 침공과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도 Bf109는 맹활약하며 연합군에게 공포의 이미지를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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