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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폰 만슈타인



단치히 회랑 문제


  세계 2차대전의 도화선은 단치히 회랑 문제였다. 베르사유체제가 개막하면서 폴란드가 독립하게 된다. 이때, 폴란드 북부지역이자, 독일제국과 국경 지역 중 하나였던 단치히는 자유시가 된다. 현재 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인 이지역은 과거 쾨니히스베르크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동프로이센의 주요 도시중 하나였다. 히틀러는 대항 도시가 발트해 해상권을 장악할 수 있는 주요 도시임과 더불어 과거 동프로이센의 중심지인 단치히를 폴란드에 요구했다.


  뮌헨 협정 당시 이 문제가 제기 되었으나 폴란드가 이 땅을 순순히 내줄리가 없었다. 히틀러와 폴란드는 협정에서 단치히를 두고 오랜 기간 협상했으나 결렬되고 히틀러는 이 땅을 무력으로 차지할 것이라고 이를 갈면서 협정에서 나온다. 사실 이 문제가 없었으면 히틀러의 첫 공격은 폴란드가 아닌 프랑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치히 회랑 문제는 히틀러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렸고, 폴란드를 대화의 상대가 아닌 정복의 대상으로 보게된다.



단치히 회랑 (현재 폴란드 그다인스크)



백색 작전


  1939년 8월 23일 독소 불가침조약이 체결되자 프랑스는 자신들이 독일과 양면전쟁이 아닌 양대 국가 대결 양상으로 흘러갈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위기감을 갖기엔 너무 늦었다. 히틀러는 이미 백색작전이라는 폴란드 침공 계획안을 세운지 오래였다. 8월 26일 새벽 바로 돌입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바로 직전일은 8월 25일 영국과 폴란드간의 군사 동맹이 체결되자 이를 한차례 미루고 9월 1일 작전을 개시한다.


  8월 31일 폴란드 국경지대에 있는 독일 도시 글라이비츠의 한 방송국에 폴란드 병사들이 들이 닥쳐 독일에 대한 전쟁 선언문을 낭독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나치 친위대 슈츠스타펠의 장관 하인리히 힘러의 자작극이었다. 그의 명령을 받은 국가보안본부 장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지시하에 폴란드 육군으로 위장한 독일 병사들이 방송국에 침투했고, 이들을 사살해 폴란드 육군 군복을 입힌채 시신을 버렸다. 


  곧바로 다음 날 독일은 선전포고 없이 폴란드에 대한 침공을 시작했다. 세계 2차대전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틀 뒤 폴란드가 영국과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했고, 양국도 곧바로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다. 



독일군의 진격 작전



독일군의 작전


  속전속결. 독일이 가장 취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은 전쟁에 대한 빠른 승리다. 나치당의 진두지휘하에 국가를 완전한 전쟁준비체제로 바꾼 독일은 이미 전쟁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지만, 국민적 여론과 대공황의 여파로 군사력 증강이 쉽지 않은 여타 국가들은 전쟁 대비가 상대적으로 매우 빈약했다. 독일은 이들이 위기감을 느껴 군사력 증강을 하기 전에 빠르게 전쟁을 끝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독일군은 폴란드 침공에 대한 작전을 만들게 되고 이 작전을 세우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나치의 전략왕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다. 만슈타인은 향후 나치 독일의 제갈공명 역할을 하며 프랑스 침략에 중요한 전략을 세운다. 


  백색 작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 전선에 공세를 가하며 폴란드의 전력을 최대한 분산 시키는데 있다. 특히 남부집단군을 주력 부대로 삼았다. 그 이유는 우선 남부에 위치한 슬로바키아가 나치에 협조할 것임을 이미 약속했고, 남부에 위치한 독일군 10군에 기갑 세력이 집중되어 있어 이들이 남부를 돌파해 빠르게 중부지역에 돌입한다면 북부와 중부의 군대도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폴란드 남부지대는 중화학 공업지대와 탄전이 위치해 폴란드의 보급을 손쉽게 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 필요한 물자까지 조달 받을 수 있게 된다. 


단치히를 공격하는 나치의 도이칠란드급 전함



폴란드의 전쟁 대비


  폴란드 역시 이전부터 독일과의 일전을 대비했었다. 다만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독일군이 쳐들어 온것이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폴란드는 독일의 진격을 최대한 지연시키고, 영불의 협조를 통해 군사력을 정비하고 히틀러에게 반격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폴란드는 철저한 벙어 체계를 만들기 위해 예비군을 동원하고 현대 무기들을 방어 최전선에 배치시켰다. 그리고 폴란드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나라였기에 모든 영토를 뺏기지 않으려고 독일과의 국경 지대에 전반적으로 국방력을 강화 시켰다. 하지만 전쟁을 보면 알겠지만 전력이 열세에 있는 국가가 방어전을 펼치게 되는 경우 최대한 전선을 줄여야 한다. 폴란드의 전략은 애초에 잘못 설정되었다. 


  게다가 공군 전력에 대해 중요시하지 않았던 점도 발목을 잡았다. 독일은 이전부터 공군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신형 전투기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제공권 장악을 통해 전술적인 정보 획득도 쉬워질 뿐만 아니라 육군 보병 입장에서 하늘에서의 폭격 만큼 공포스러운 순간이 없다. 전술적 정보가 없는 보병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적에게 반격할 새도 없이 무차별 적으로 약점을 노출 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폴란드 침공 총사령관, 발터 폰 브라우히치



남부집단군의 대활약


  독일은 총사령관 발터 폰 브라우히치의 지휘하에 폴란드 침공을 시작한다. 북부 해안지대의 포격을 시작으로 침공을 알린 독일은 양동작전을 실행한다. 만슈타인의 계책에 따라 남부집단군이 중심이 되어 폴란드 국경선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뒤에서 슬로바키아 군의 지원을 받으며 이들은 빠르게 진격한다.


  남부집단군은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장군의 지휘하에 움직였다. 폴란드는 히틀러가 이전부터 단치히 회랑에 목숨을 걸었기에 전쟁의 중심지 역시 이곳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단치히 수비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들의 전략이 무색하게 주력 전차부대를 남부집단군에 위치시키고 룬트슈테트는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으며 연전 연승을 거둔다.


  특히 남부집단군중 가장 성과가 컷던 부대는 발터 폰 라이헤나우가 이끄는 제 10군이었다. 이들은 개전 이틀만에 바르타강에 도달했고, 9월 8일에는 우치시를 손에 넣게된다. 순식간에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 근교 지대까지 도달한 것이다. 단치히 방면에 수비를 견고하게 한 폴란드 입장에서는 남부 집단군에 열흘만에 바르샤바 근교를 함락당하자 크게 당황했다. 폴란드는 바르샤바 수성을 위해 브주라로 모이게 된다.



폴란드 포즈난 주 사령관, 브라디슬라프 보르트노프스키



브주라 전투


  폴란드 포모제군 사령관 타데우즈 쿠트졔바와 포즈난군 사령관 블라디슬라프 보르트노프스키는 브주라에서 반격을 준비했다. 이들은 총 4개사단을 이끌고 그놀-코프나츠키 소장으로 하여금 독일 제8군 공격을 감행했다. 독일군의 약점을 잘 파고든 폴란드 군은 초기에 독일군에게 큰 타격을 줬다.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은 독일군은 바르샤바를 공략중이었던 남부집단군의 예비병력과 제 4 항공전대를 투입하며 브주라 공략에 총력을 기울인다. 


  항공 전대의 투입으로 폴란드 진영의 진격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다. 그사이 제 8군을 이끄는 요하네스 블라스코비츠와 제 4군을 이끄는 퀸터 폰 클루게가 브주라 전장에 투입되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공군 전력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한 지친 폴란드 군과 별다른 저항 없이 바르샤바에 도달한 독일 군의 전투에서 전력 차이는 매우 컸다. 17일 부터 21일까지 독일 군에게 포위 당한 포츠난 군은 대부분의 지휘관들이 전사했고, 사령관인 보르트노프스키는 포로로 잡히게 된다.

 


브주라 전투 진행도



  결국 양군의 3만여명이 전사하고, 17만명의 폴란드 군이 포로로 잡히게된 브주라 전투는 폴란드 군의 항복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서 벌어졌던 최대의 규모였던 이 전투에서 패배한 폴란드는 사실상 모든 주요 거점을 독일에게 함락당하게 된다. 간신히 살아남은 일부 폴란드 병사들만 캄피노스 숲을 가로질러 바르샤바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의 활약이 대단했다. 브주라 전투는 물론 폴란드 침공에 있어서 큰 화력차이가 났던 부분이 바로 공군의 힘 차이였다. 이들은 개전과 동시에 1시간 가량 바르샤바를 폭격하면서 폴란드 군대에 공포를 심어주며 사기를 떨어뜨리는데 큰 역할을 한다. 또한 브주라 전투에서 역시 독일 공군은 끊임없이 폴란드 공략에 앞장서며 폴란드 군을 괴롭혔고, 폴란드가 해당 지역을 포기하고 후퇴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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