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영민했던 어린아이 김옥균 세도정치가 한창이던 1851년, 충청도 회덕군에서 당대 최고 명문가인 안동 김씨 가문에 한 아이가 태어난다. 어린 시절 부터 외모가 출중했는지 ‘백옥같이 곱고 희다’ 라는 의미의 옥균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이 옥균이라는 아이는 6살 가문의 유력가였던 김병기의 양아들로 들어가게 된다. 김옥균은 어린 시절부터 문장에 능했다. 밤하늘에 뜬 달을 보고 “저 달은 크기는 매우 작으나, 온 천하를 비추는구나” 라고 말할 정도로 야망과 포부가 대단한 아이였다. 박규수의 문하로 들어가 개혁사상을 배우다 1870년대의 조선은 흥선대원군이 한창 프랑스, 미국 등 문호를 개방하려는 이양선을 상대로 조선을 지키려는 시기였다. 이떄 과거에 급제한 김옥균은 홍문관 제학을 역임하던 박지원의 ..
9살의 나이에 로마를 격파하기로 결심하다. 기원전 3세기 경, 로마와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섬 지배권을 놓고 큰 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하게 되고 로마는 시칠리아 섬에 지배권을 얻게 된다. 이 전쟁 이후로 양 국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고 카르타고는 로마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이 전쟁이 바로 제1차 포에니 전쟁이다. 당시 카르타고에는 하밀카르 바르카라는 위대한 장군이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카르타고의 패전을 지켜본 이가 있으니, 바로 그의 아들 한니발 바르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카르타고 군대가 로마인들에게 짖밟히는 장면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그는 겨우 9살에 나이에 로마를 반드시 멸망시키기로 카르타고의 신 타니트에게 맹세하였다. 스페인 진군으로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열..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원균 1597년 여름 일본은 조선에 대한 2차 침공을 가한다. 당시 일본은 부산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명나라와 평화 협정을 진행중이었다. 하지만, 양국의 협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에 대한 두번째 공격을 명령한다. 이것이 바로 정유재란이다. 조선의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1592년 일본 군대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던 조선은 다시 한번 일본에 의해 국토가 유린당하는 슬픔을 겪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가했다. 조선은 의도적으로 해안 도시에서 육지로 올라가는 도로를 무너뜨리면서, 일본군이 쉽게 보급을 하지 못하도록 손을 쓰고 있었다. 특히 이순신을 중심으로 조선은 정예 수군을 보유하게 되었다.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은 다시 있을 전쟁을 대비해 다량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