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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3당합당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큰 영향을 줬다. 전국 정치 구도는 호남과 비호남으로 나뉘게 되어 호남 진영은 지지세가 크게 약화 되었다. 여당인 민주자유당은 다음 대선도 손쉽게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하지만, 대선 직전에 치러진 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자당은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하게 된다. 당시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고 통일국민당을 창당했는데, 제3정당인 이 당이 무려 득표율 17.4%로 약진했고, 민자당은 한자리가 부족하여 과반 의석에 실패하게 되었다. 만에 하나 통일국민당과 민주당이 단일화 하게 된다면 민자당 세력에 대등하다는 것이 수치 상으로 증명이 된것이다. 민자당은 다행스럽게도 TK지역에서 탈당한 일부 무소속 위원들이 복당을 하며 과반의석 유지는 가능해졌지만, 다음 대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김영삼은 당시 민자당 내부 세력을 정리하며 점차 대선후보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었다. PK, TK, 충청권을 아우르는 거대 정당에 대선후보면 차기 대통령 당선에 매우 유리한 것은 분명했다. 문제는, 3당 합당이 일어난지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은 탓에 당 내에서도 반 YS 세력이 매우 많았다. 대표적으로 구 민주정의당 세력이었다. 정주영 역시 이점을 놓치지 않았고 수도권을 기반으로 반 YS 정서가 있는 TK에서 표를 빼앗아 오는 전략으로 김영삼과 경상권에서 대결 구도를 펼쳤다. 이와 더불어 PK의 젊은 유권자 사이에서도 서서히 정권 교체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김대중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 결과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3자구도로 진행되며 초박빙상태의 선거 구도가 지속되어 가고 있었다. 김영삼의 당선이 반드시 보장 되어 있는 상황은 분명 아니었다.
이 와중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1992년 12월 11일 대선 구도를 결정짓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당시 부산에 있던 초원 복집에서 정부 기관장들이 모여 식사를 하게 된다.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김영환 부산시장, 박일룡 부산지방경찰청장 등 9명의 기관장들이 식사에 참여했다. 초원 복집은 부산 남구 대연동이 위치 하였고, 민주자유당 부산시 당사가 인근에 위치 했었다.
당시에 통일 국민당은 초원복국에 민주자유당과 정부 관련 인사들이 자주 드나든다는 사실을 알고, 초원 복집에 도청장치를 미리 설치해두었다. 당시 모였던 기관장들의 대화는 도청되어서 통일국민당사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당시 대화 내용을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당 내용은 당시 녹취록을 기반으로 작성했다.
“우리가 남이가”
“부산, 경남, 경북까지만 요렇게 단결되면 안되는 일이 없다. 5년 뒤에는 대구 분들하고 서울 분들하고 다툼이 될는지…”
“대구 분들 우리한테 손벌릴려면 지금 화끈하게 도와주고..”
“지역감정이 유치할진 몰라도 고향 발전엔 도움이 돼”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정부 기관장들이 모여 실시한 명백한 불법선거 운동이었다.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특정 대선 후보를 지지했고, 시민들에게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직접 호소했다. 더불어 지역 감정을 부추겨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이 대중들에게 공개가 되면 대중들은 발언을 한 정부 인사들에게 실망 할 것이라고 통일국민당을 예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보도를 통해 이득을 본것은 다름아닌 김영삼 후보 측이있다. 정부기관장들의 불법 선거 모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PK와 TK의 결속을 가져오고 실제로 지역감정이 유발되어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국가 기관장들이 모여 지역감정을 조장해야 한다고 말한 대화처럼 실제로 시민들 사이에 지역감정을 부추기는데 성공하게 된다. 반대로 이 사건을 폭로한 통일국민당측은 불법 도청으로 인해 공격을 받게 된다. 그 결과 김영삼은 손쉽게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게 된다.
결과적으로 초원 복집 사건은 14대 대선에서 김영삼이 승리를 가져가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총선 이후로 이어져오던 3자구도가 완전히 박살나게 되고, 정주영은 TK에서 서서히 쌓아가던 기반을 한순간에 김영삼에게 모두 헌납했다.
3당 합당으로 정치적으로 지역 주의가 형성되었다면, 초원 복집사건은 우리나라에 형성된 지역주의 기반을 이용해 시민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만든 사건이다. 이전에도 지역감정을 이용해 선거 구도를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만든 사건은 분명 존재했으나, 초원복집사건처럼 대놓고 정부 인사가 지역감정을 부추긴 적은 없었다. 이전의 정치인들도 지역감정 부추기면 자신의 정치에 유리하다고 분명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반칙이고 치사하고 더러운 수일 뿐더러 지역 감정은 국가 발전에 해가 되는 요소이다. 때문에 이전 다른 정치인들은 차마 그런짓까지는 하지 않았다. 유신 체제 시절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면서 정의와 의리를 외친 김영삼은 92년 지역감정을 부추겨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그가 의리와 정도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또한, 이 사건은 언론의 프레임 설정의 무서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부 인사들이 초원 복국에서 불법 선거운동을 했음에도, 언론은 통일국민당의 도청행위에만 초점을 맞춰 방송에 내보냈다. 이 당시 조선일보 논평이 참 일품인데, “초원 복집 도청 사건으로 통일국민당이 선거적 우위를 가져갔겠지만, 불법 도청을 저지른 세력에게 어떻게 권력을 맡길 수 있겠는가“ 였다. 물론, 도청 자체는 문제가 될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밥집이라고 해도, 밥을 먹기 위한 곳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것 자체는 주거침입죄에 해당된다. 또한, 독수독과의 이론에 따라 불법적으로 취한 증거라면 해당 증거는 정식으로 채택 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본 사건처럼 사안이 국가적으로 매우 중대한 이슈라면 수사기관이 아닌 제3자에 의한 위법 증거수집은 어느정도 증거로 사용 가능한 것이 통설이고, 이는 판례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불법 도청 프레임을 설정해 해당 사건에서 나타난 정부 차원에서 일어난 지역감정조장과 부정선거개입은 묻히게 된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기획했다고 추정되는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은 이 사건 이후에도 오랜 기간동안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거나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때 비서실장까지 역임하게 된다. 유신정권 시절부터 독재 정권 아래 유신헌법 조항을 만든 그는 김영삼 정부 아래에서도 법사위원장을 역임하고, 정권이 바뀐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자신의 고향인 거제시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노무현 탄핵에도 앞장선다. 모두 알다시피 현재에 와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징역을 살게 되었고,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최근 커뮤니티가 발달 하면서 각 커뮤니티에서도 생성 배경이나 사용자층에 의해 일정한 성격이 만들어 지게 되는데, 지역감정을 이용해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는 경우도 많다. 몇몇 커뮤니티에서 지역감정을 이용해 일반인이라면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여러 단어를 만들기도 한다. 이는 굉장히 안좋은 문화고 사회 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눈 앞에 당면한 문제이기에 외면해서도 안된다.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초원복집사건은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역감정을 정착 시키는데 한몫했다.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이전에도 분명 존재했지만, 그래도 쉬쉬하는 분위기였는데 이렇게 대놓고 그것도 정부 관련 인사들이 이런 말을 하자 시민층에서도 대놓고 지역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는 국민들에게 악영향을 끼친 대표적 사건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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