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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22일, 대한민국 정치권에서는 대대적인 정당 개편이 이루어 졌다. 이 사건은 오늘날의 정치 구도에 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18년 현재를 기준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절반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6월 민주항쟁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게 된다. 전기는 이승만과 군부 독재 시절을 의미하고, 후기는 제6공화국의 민주화 이후 시기를 나타낸다. 특히 후기 대한민국 정치 체제를 만들어 가는데 큰 역할을 한 사건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3당 합당이다.
3당합당은 대한민국 보수 정당의 시발점이었다. 현재의 보수와 민주정당 이미지와는 다르게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오히려 민주정당 쪽이다. 민주당계 정당은 이승만 정권부터 거의 60여년간의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거대 보수정당의 출범이 되게 된 뿌리는 3당합당이다. 3당 합당 자체의 내용은 꽤나 단순하다. 말그래도 단순히 3개의 정당히 합친것이다. 3개의 정당은 각각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을 뜻한다. 이 3개의 정당이 합쳐 민주자유당을 창당하게 된 사건이다. 말로만 들었을 땐, 그리 대단한 사건 같아 보이지는 않아보인다. 정당이 합치고 사라지게 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위 3개 정당의 통합은 대한민국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13대 대선이 1987년에 이루어지는데, 민주화 이후의 대한민국은 이제 군부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민주화 정치체제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다.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볼때마다 가장 화가 나는 행위들 중 하나가, 과거 적폐 세력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점인데, 1987년에도 똑같았다. 광복 후 친일파 제거를 못했듯이, 군부 독재 이후 독재 세력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게 된것이다.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김대중과 김영삼의 단일화가 실패하게 되자, 어부지리로 민주정의당의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가 당선되게 된다. 민주화진영에서 13대 대선은 치욕적인 선거로 남게 된다. 애초에 지지기반에 TK만 존재했던 노태우는 13대 총선에서 자신이 속해있던 정당인 민주정의당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집권 여당이 과반수당이 되지 못하게 된 여소야대 구도로 흐르게 된다.
민주정의당 : 125석
민주평화당 : 70석
통일민주당 : 59석
신민주공화당 : 35석
민주 평화당은 김대중이 이끄는 정당으로, 당시 대부분의 지지기반은 호남과 수도권 일부였다. 당시엔 통일민주당의 PK와 호남 세력은 대척점에 존재하지는 않았다. 둘은 지지세력과 이념은 분명 달랐지만, 군부 독재에 있어서는 항상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박정희 시절때, 부마 민주항쟁과 곧바로 일어나게 되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생각하게 되면 두 지역의 기본 이념을 알 수 있다. 사실, 박정희 정권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지역 감정은 분명 존재했으나, 지금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자면,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지지기반은 너무나도 약했다. 비록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했으나, 국회에서도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해 대통령이 정책을 집행하기도 쉬운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또한, 삼엄했던 군부 독재 시절과 달리 민주화 정부가 출범하게 되니 다양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게되며 대통령의 권위는 이전보다 많이 약해졌다. 노태우와 민정당은 자신들의 정치 권위를 위해서라도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필요했다.
김영삼은 겉보기에는 상황이 좋아보였으나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김영상은 어쨋든 13대 총선에서 김대중을 꺽고 2위를 차지하기는 했으나, 표 차이가 크지 못했고 실질적으로 김대중 vs 김영삼의 양자구도라면 오히려 김대중의 우위를 점치는 언론이 더욱 많았다. 더군다나 총선에서 민주평화당에 밀린 제2여당이었다. 분명 통일민주당은 민정당처럼 군부체제의 색채는 없었다. 하지만, 두 정당의 정치적 이념 기반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지기반도 TK와 PK로 먼 거리가 아니었고, 보수주의와 반공을 주장하는 점에서 두 정당은 이념적 공유가 가능했다.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은 제3야당으로 실질적으로 힘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늘 권력에 중심에 있던 김종필이었지만, 혼자 대통령 후보로 나와 성공한 적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김종필은 정계의 중심에 서고 싶은 욕구가 존재했다.
이 세 정당이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게된다. 그렇게 세 정당이 합당을 하게 되고 김대중의 민주평화당만 유일한 야당으로 남게 되버린다. 거대 정당으로 자리매김한 민주자유당에 의해 완전히 정계에서 완전히 고립된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반발도 존재했다. 반발이 가장 많이 일어난 곳은 당연히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측이었다. 어쨋든 통일민주당과 김영삼은 군부 독재 체제에 맞서 싸워온 정당이었는데, 그 독재 세력과 손잡는 것이 반발한 위원들이 많았다. 초기엔 대다수의 국회위원들이 이에 반발했다. 하지만, 이 당시 김영삼의 리더십이 또 한번 발휘되는데, 국회위원 한명한명을 찾아가며 그들을 설득하게 된다. 이 중에서 끝까지 반발한 사람들도 존재했다. 이들은 대부분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다가 김영삼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하게 된 초선위원들이었다. 이 들은 3당 합당에 반대해 민주평화당을 탈당해 민주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하게 된다. 이 중 대표적인 인물이 훗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게 되는 노무현이다. 이들이 만든 민주당은 총 8명이 소속되어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이 정당을 꼬마민주당이라고 주로 부르게 된다.
3당 합당은 대한민국 정치판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게 된다. 아직까지도 보수정당이 진보정당에 비해 선거에서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되는 근본적 이유가 된다. 흔히 말하는 보수 정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만들게 된다. 이에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지역감정이다. 박정희가 자신의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유발한 이후, 호남과 영남의 지역감정은 거세졌다. 이 상황에서 TK와 PK의 지지기반 통합은 전국 지역을 호남대 비호남으로 만들게 되었으며, 당시에도 호남과 수도권의 2~30대 젊은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민주자유당의 지지기반으로 흡수되었다. 그나마 20대 총선을 기점으로 흔히 말하는 낙동강 벨트 지역이 문재인의 지지기반으로 자리잡기 전까지, TK와 PK는 보수 정당의 주요 지지기반이었다.
특히 3당합당으로 민주평화당과 훗날 이름을 바꾸게 되는 새천년민주당까지, 이 정당들에게 호남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씌우게 된다. 보수 정당이 정계의 메인스트림으로 자리잡게 되고, 민주당을 마이너 정당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버리며, 보수 정당 = 집권 여당이라는 이미지 까지 가져온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민주당을 호남에서 벗어난 전국 정당의 이미지를 가져오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절대 쉽지 않았다. 훗날 더불어 민주당의 주요 지지기반이 수도권이 되며, 그나마 호남 정당의 이미지를 벗어나고, 안철수가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삼게 될 때까지 쭉 이어지게 된다.
물론, 3당합당이 부정적인 역할만 수행한것은 아니었다. 김영삼이 민주통일당의 국회위원을 설득하기 위해 한말 중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라는 말을 했듯이, 그는 군부독재 정당에 들어가 그 세력을 약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민주자유당 역시 서로 이념적 차이가 존재하는 세력이 만든 정당으로 정당 내부 세력간의 갈등이 많이 존재했다. 김영삼은 민주자유당에서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 세워 달라고 요구했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하나회 숙청을 이뤄냈다. 이렇게 김영삼은 국민들의 투쟁 없이 정치적으로 노태우 세력은 약화시키는데 성공한 점도 있었다.
3당 합당은 대한민국 정계 개편에 큰 역할을 했다. 군부 독재 세력을 약화시킨 순 기능은 분명 존재했으나, 대한민국의 지역감정을 고착시키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특히, 현 시점 보수 정당의 콘크리트 지지기반을 만들어 정당간의 경쟁이 다소 불균형 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3당 합당으로 과연 대한민국 정당 체계와 자유주의 관점에서의 정치 경쟁이 온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는 한번 다시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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