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986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이하 언협)는 “말”이라는 일간지를 통해 매우 충격적일 수도 있고 혹은 당시 국민 모두 공공연하게 알고있던 사실 하나를 폭로한다. 한국일보의 김주언기자는 1985년 10월 부터 1986년 8월까지 문화공보부가 언론사로 매일 보낸 보도지침에 584개의 문건을 공개한다. 정부의 보도지침 폭로는 국가의 분위기상 차마 말하지 못했던 정부의 언론 장악에 관해 실질적인 증거물을 제시했다. 이 보도지침의 폭로는 전두환 정부의 언론 장악 및 여론 조작 실태에 대해 빼도박도 못할 증거였다. 당연히 정부는 보도지침 폭로를 은폐하려 애썻다. 정부의 보도지침에 의해 보도지침 폭로 기사가 언론에 다뤄지지 못하게 되었다. 보도지침 폭로에 앞장섰던 주요 인물들은 국가보안법 위반과 국가 기밀 누설죄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전두환 정부의 여론 조작은 대놓고 뻔뻔하게 실행되었다. 이렇게 티나게 여론조작을 진행한 정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정부의 보도지침 전달 프로세스는 매우 단순했다. 정부는 매일 아침 언론사로 문화공보부를 앞세워 보도 지침을 뿌렸다. 신문에 실리게 될 기사의 타이틀과 방송 뉴스의 타이틀과 큐시트까지 고스란히 전달됬다. ‘땡전뉴스’라는 말이 당시 전두환 정부의 언론 간섭 방법을 알려주는 대표적 단어이다. 전두환 정부가 방송가의 pd들과 신문사의 기자들의 수고를 덜어 주고 싶어서 그런 지침을 전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언론이 소식을 전하고 그 소식들이 국민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랬다.


 제5공화국은 언론 장악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문화공보부 산하에 홍보조정실을 신설하여 매일마다 각 언론사에 언론지침을 은밀하게 전달했다. 뒷날 밝혀진 얘기로는 홍보조정실은 형식적인 부서였을 뿐이고 실제로는 청와대의 정무수석비서관이 보도지침에 대한 내용을 결정해 이를 배포했다. 보도지침을 폭로한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편집국장은 매일 아침 홍보조정실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전화 내용을 수첩에 옮겨 적고 그 내용에 따라 신문의 단과 타이틀을 결정했다. 편집국장이 부재한 경우 자신이 직접 전화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보도지침의 내용을 살펴 보면 5공이 얼마나 언론 장악을 세밀하게 진행했는지 알 수 있다.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보도지침 내용을 보면 충분히 정권의 디테일함을 느낄 수 있다.


  • 오늘 오후 4시 검찰이 발표한 조사 결과 내용만 보도할 것

  • 사회 면에서 취급할 것(크기는 재량)

  • 검찰 발표문 전문은 꼭 실어야함

  • 자료 중 ‘사건의 성격’ 에서 제목을 뽑아 줄 것

  • 이 사건의 명칭을 성추행이라 하지 말고 성모욕행위로 할 것

  • 발표 외에 독자적인 취재보도 내용 불가

  • 시중에 나도는 반체제측의 고소장 내용이나 한국기독교협의회, 여성단체 등의 사건 관계 성명은 일체 보도하지 말 것


 정부는 위에 발표한 보도 지침 처럼 사건의 성격과 보도 내용 조차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나오길 원했다. 제목에 반드시 포함되어야할 키워드와 신문 단 수 까지 아주 세밀하게 지침을 내렸다. 위 사건처럼 독자적 보도내용도 신문에 내포할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는 명백히 언론인들의 보도원칙 침해다.


 5공 정부는 사건에 대해 ‘가, 불가, 절대 불가’로 사건을 나누어 신문에 실을 수 있는 지 구분했다. 또한, 앞서 언급한대로 사건에 대해 서술 할 때 어떤 타이틀에 어떤 단어가 반드시 포함 되어야 하거나, 절대 들어가지 말아야할 단어 까지도 지정해주었다. 언론사에서 직접 보고 들을 취재 내용과 언론인들의 보도 가치가 아닌 정부의 필요에 따라 보도 내용이 결정된 신문이 사람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언협 관계자와 김주언 기자처럼 정부의 부정을 폭로 했던 위대한 인물들도 있지만, 보도지침에 침묵한 언론인도 많이 존재했다. 누구보다 공정해야할 기자가 언론인의 양심을 저버리고 정부가 원하는 대로 기사를 쓴 사람도 적지 않았다. 자신들이 직접 취재한 사실이 아닌 정부가 지정한 사실만을 신문에 실은 언론사도 분명 존재했다.


 가장 좋은 기사는 기자가 본 내용을 토대로 사실만을 언급하는 것이다. 누군가 주체가 발생해 기사에 자신의 가치관을 씌우게 되면 기사는 왜곡되기 십상이다. 기자의 역할은 정부가 숨기려고하는 그 사실 자체를 추적해 시민들에게 이를 전달해야한다. 80년대 보도지침에 따라 기사를 작성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역행하는 행위였다. 영화 ‘택시운전사’에 나오는 위르겐 힌츠페터처럼 정부가 숨기려는 사실을 취재해 세상 밖에로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다. 5.18 당시 신군부는 광주에 출입금지령을 내리고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했다. 이런 위험한 현장에 들어가 정부가 은폐하려는 사실을 밝혀내야한다. 5공화국을 8년간 지속시키는데 보도지침에 굴복한 기자들도 한 몫을 한 것이다. 시민들이야 정부의 폭력에 어쩔 수 없이 반항하지 못하고 그냥 살아갔었다고 해도, 저널리스트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그래선 안됐다.


 보도지침 폭로사건은 제5공화국이 무너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후 87년에 발생하게 되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더불어 많은 대학생들과 국민들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그 후 이한열 열사 사망 사건으로 민심을 더욱 폭발하게 된다. 더이상 전두환의 폭정을 참지 못하고 시민들이 대규모로 일어나게 되고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에 민주화를 가져오게 하는 6월 민주항쟁이었다.


 애석하게도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도 정부 혹은 다른 주체로 부터의 언론 간섭은 종종 일어났다. 6월 민주 항쟁이후로 정치체제 측면에는 확실이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나, 언론 민주화는 부분적으로 일어났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투명한 언론 구조를 가지고 있냐고 시민들에게 물어보면 아직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2018년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43위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무려 전해보다 20계단 상승한 수치이지만 아직 갈길은 분명 멀다. 언론 자유 지수가 국가 경제규모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지수이지만, 국가의 전반적인 경쟁력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자유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언론 자유가 있는 나라가 더 많은 생각과 가치관을 서로 간에 공유하게 되고 더 발전된 사회에 가까워 질 수 있다.


 5공 시절처럼 정부 부서가 직접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보도 지침을 내려주는 경우는 사라졌으나 정부는 지속적으로 언론의 간섭을 실시했다. 실제로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전 정부에서 국회의원 이정현이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있을 때 KBS에 세월호 참사 보도에 관련해 압박을 가한 사실이 있었다. 이처럼 정부의 언론 간섭은 완벽히 사라졌다고 보기 힘들다. 불과 작년에 MBC 총파업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생각해보자.


 보도지침 사건에서 언론을 탄압하는 정부도 문제지만 언론인의 자성도 필요하다는 점을 느낀다. MBC 총파업 사태야 말로 언론인들이 언론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운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보도 지침과 같은 정부의 언론 간섭이 일어 났을때, 언론인들은 이 사실 마저 폭로한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언론인이기에 반드시 그래야 한다. 펜이 무기가 될 수 있다면, 그 펜은 무거워야 한다. 그 펜으로 함부로 문장을 만들면 안된다. 자신이 작성해야하는 글의 무게를 책임져야한다. 요즘 점차 기사의 무게가 떨어져가고 있다. 몇몇 기자들은 자신이 쓰는 지도 의심스러운 수준의 문장 나열, 부족한 사실 관계 파악, 부실한 내용으로 기사를 써내려간다. 80년대 처럼 정부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던 지극히 가벼웠던 언론의 무게로 돌아가고 있는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정부를 지켜보는 눈이 언론이다. 그리고 언론을 지켜보는 눈은 국민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국민들은 언론은 지켜볼수 있는 완벽한 판단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국민이 보지 못하는 사실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언론인들의 자성이 중요하다. 언론원칙에 따라 잘못된 것이 있다면 스스로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점을 판단하고 고칠 줄 알아야한다. 보도지침 사건때 우리는 정부에 탄압한 언론과 이런 자성으로 정부를 폭로한 언론 2가지 면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보도지침은 우리에게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사건이다.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