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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이 개막하기 한달 전,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의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이 공개 되었다. 두 나라의 스쿼드를 보고 다소 의외라는 평가가 나왔다. 축구팬들은 다 알겠지만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는 월드클래스 축구 선수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슈퍼 스타 군단이다. 하지만 최근 두 나라는 월드컵에서 예상 이외로 부진을 겪고 있었다. 선수들의 이름 값에 비해 항상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두 나라는 명성을 되찾아와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 나라 최고의 스타들을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 시키기를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들이 선택한 엔트리는 다소 의외였다.


 우선 디디에 데샹 감독이 이끈 프랑스의 상황을 살펴보자. 데샹은 선수시절부터 카리스마가 넘치는 유형이었다. 마르세유, 유벤투스, 첼시를 거치며 주장도 많이 하고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로랑 블랑, 지네딘 지단과 함께 팀의 중심을 잘 잡아 주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축구에 대한 가치관도 많이 확립 되었던 것 같다. 데샹의 축구관은 확실하다. 점유율 보다는 공격의 효율성을 강조하며 상대의 측면을 뚫어 득점 기회를 만든다. 데샹 감독은 이에 맞는 선수들을 선발했다.


 엔트리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일단 가장 논란이 되는 아드리앙 라비오의 사례를 보자. 라비오는 중원 조율에 있어 탁월함을 보이는 선수이다. 볼 자체를 다루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데샹 감독은 점유율 축구를 그렇게 좋아 하지 않았다. 볼을 끌면서 중원에서 템포를 조절 하는 것보다는 빠르게 전진 패스를 구사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다. 17-18시즌 PSG에서 중원 에이스 노릇을 하던 라비오는 이런 이유로 프랑스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 반면, 라비오 대신 중원을 구성한 선수는 프랑스 대표팀의 터줏대감 블레즈 마투이디 였다. 마투이디의 강점은 전문 윙이 아닌 미드필더 이면서도 빠른 스피드에 있다. 속도 자체가 그냥 넘사벽인 음바페와 포그바의 전진성이 합쳐진다면 더욱 강력한 힘이 발휘 된다. 데샹은 자신이 꿈꾸는 효율적인 축구를 위해 과감히 라비오를 탈락시켰다.


 그리고 데샹은 최전방 스트라이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를 딱 한명만 데려갔다. 프랑스에는 훌륭한 스트라이커가 넘쳐난다. 아스날의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맨유의 앙토니 마르시알과 같은 자원이 있고, 인성 문제로 뽑기는 어렵긴 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의 카림 벤제마도 있다. 하지만 데샹의 선택은 올리비에 지루였다. 국내 축구팬들이 지어준 지루의 별명은 ‘연계소문’이다. 매우 이타적인 유형의 공격수인 지루는 라인 아래로 깊숙히 내려와 수비를 돕고 미드필더와의 연계성에서 큰 강점을 보이는 선수다.  프랑스의 에이스이자 영리한 그리즈만이 쉐도우 스트라이커 자리에서 전체적인 조율을 맡으며 기회를 엿보게 되는데, 그리즈만이 고립되지 않도록 지루가 끊임없이 내려와 그를 도운다. 비록 지루는 대회를 통틀어 유효슈팅을 단 1개만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승팀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할 수 있었다.


 데샹 감독은 이처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를 중심으로 선발했다. 자신이 꿈꾸는 효율적이고 빠른 역습 축구를 구사하기 위해서 그에 맞는 선수들을 대거 기용했다. 또한, 카림 벤제마와 같이 팀 전체 케미스트리에 악영향을 끼칠 선수 역시 선발하지 않았다. 벤제마가 뛰어난 스트라이커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최근 폼이야 떨어졌지만, 올해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스트라이커이다. 그러나 벤제마는 인성에 있어 많은 문제를 보여온 선수이다. 데샹은 팀이 우승으로 가기 위해서 팀 전체가 잘 뭉쳐야 된다고 판단했다. 데샹 감독은 이렇게 선수가 아닌 팀을 만들었다.


 이제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의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이 뽑은 엔트리를 살펴보자. 아르헨티나는 이전부터 문제가 많았다. 지역 예선 과정에서 자주 삐걱 되었다. 세계 최고의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가 존재했지만 국가대표에서는 항상 부진을 겪었다. 삼파올리 감독은 칠레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삼파올리의 특징은 매우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한다는 점. 전방에서 압박을 즐기고 라인을 끌어 올려 상대를 공략한다.


 아르헨티나엔 삼파올리의 축구에 잘 맞는 선수들이 많아 보였다. 대표적인 선수가 맨시티의 세르히오 아구에로와 인터밀란의 마우로 이카르디. 이카르디의 맹점은 발이 다소 느리다는 것인데, 수비 라인을 한껏 끌어올리게 되면 이카르디의 단점이 상쇄된다. 활동량이 뛰어나고 이타적인 아게로가 세컨드 스트라이커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에 골 냄새를 기가막히게 맞는 곤잘로 이과인과 말이 필요없는 리오넬 메시가 합세해 공격진을 이룬다면 충분히 삼파올리의 축구가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들을 받쳐 줄 수 있는 대기 선수가 무려 파울로 디발라와 앙헬 디마리아다.


 아르헨티나는 항상 수비에 취약점을 보였다. 클럽 팀이라면 수비수를 외부에서 사오면 되겠지만, 국가대표는 불가능하다. 불가피하게 다소 취약한 수비진을 이끌고 가야하는 상황이라면 가장 좋은 선택은 수비수들에게 공이 안가게 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항상 공격 축구에 올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훌륭한 공격진에 비해 수비진의 스쿼드는 항상 빈약했다. 그래서 메시를 중심으로 점유율 축구를 가져가 수비수들에게 공 자체를 안가게 만드는 작전을 주로 채택했다. 하지만, 축구가 말처럼 쉽지 않듯이 항상 수비진의 실수로 아르헨티나는 실점을 해왔고, 이 맹점이 그간 아르헨티나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이런 약점이 삼파올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까? 수비의 실수 때문에 지난 월드컵에서 준우승에 머물렀던 만큼 수비수 엔트리 선발에 총력을 가했다. 삼파올리의 선발이 이해가 가지 않는건 아니다. 그의 선택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점유율과 활동량을 앞세운 축구를 하겠지만, 뛰어난 수비수도 분명 필요했다. 반드시 필요한 주전 수비수 3명을 바탕으로 풀백과 센터백을 모두 오갈 수 있는 세비야의 가브리엘 메르카도, 맨유의 마르코스 로호 등을 선발하며 백3에 기용할 선수를 6명이나 기용했다. 그렇기에 희생 당할 공격수가 필요했다. 모두 뛰어난 선수 였지만 공격 축구를 구사하기 위해 점유율과 활동량을 강조했고, 발이 느리고 많이 뛰지 않는 마우로 이카르디가 희생당했다. 올해 무려 29골이나 기록한 세리에 A 득점왕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재미있게도 두 나라는 16강에서 만났다. 두 나라 모두 조별에선에서는 다소 부진했다. 계획했던 축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조별예선을 거치면서 두 나라는 전술 수정이 불가피했고, 마침 새로운 전술로 16강에서 마주쳤다. 프랑스는 사실 조별예선 3차전부터 서서히 문제점을 고쳤다. 효율적 축구를 위해서 빠르고 정확한 전진패스가 필요했으나 이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발재간이 좋은 그리즈만을 쉐도우 스트라이커 자리로 내리고, 전방에 지루를 배치시켰다. 여기에 좌우측 풀백인 에르난데스와 파바르의 폼이 살아나면서 서서히 프랑스의 축구가 완성되고 있었다. 반면, 극적으로 3차전을 이긴 아르헨티나는 전술적인 개선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3차전 승리는 그저 선수들의 역량이었다. 첫골을 기록한 메시와 원더골을 기록한 로호 덕분에 이겼을 뿐, 그 과정에서 전술적 변화는 찾아볼 수 가 없었다.


 16강 경기는 의외로 재미있게 흘러갔다. 효율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팀이 늘상 그렇듯이 초반은 프랑스가 끌려가는 구도로 전개되었다. 전반 10분간 아르헨티나는 지금까지의 부진을 비웃기라도 하듯 거세게 프랑스를 몰아쳤다. 하지만, 프랑스의 무기는 바로 킬리앙 음바페. 라인을 한껏 끌어 올린 아르헨티나 수비진 사이에서 공간을 찾은 음바페는 그대로 골문 근처까지 질주했고, 이를 막기위해 마르코스 로호가 태클로 저지해 PK를 내줬고, 그대로 득점으로 이어졌다.

 아르헨티나의 선수들을 정말 뛰어난 것 만큼은 사실이었다. 리오넬 메시와 디마리아의 활약으로 아르헨티나는 역전에 성공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축구는 그사이 완성되었다. 풀백이 살아나면서 좌우측 윙어가 살아났다. 음바페는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아르헨티나 수비진을 괴롭혔고, 아르헨티나는 그대로 무너지게 된다. 결과는 4대3으로 프랑스의 승리로 끝이났다.


 이후 프랑스는 우루과이, 벨기에, 크로아티아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우승을 차지한다. 데샹은 유로 2016부터 그리즈만을 중심으로 효율적이고 빠른 역습 축구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했다. 유로2016에서 준우승을 기록할 당시 그리즈만의 롤이 명확하지 못했다. 윙어, 스트라이크, 쉐도우 자리를 오가면서 최적에 자리를 찾기에 급급했으나 끝내 자리를 잡지 못한채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프랑스의 선수들의 활약으로 어떻게든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데샹 감독의 성에 차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즈만의 자리 찾기는 2년간의 평가전을 통해 빛을 보게 된다. 그리즈만과 호흡이 좋은 지루가 원톱 스트라이커로 낙점을 받게 되고, 마투이디, 우스만 뎀벨레, 킬리앙 음바페와 같이 측면을 휘저어줄 자원들을 대거 기용한다. 심지어 데샹에게 운도 따랐다. 유로 2016에서는 다소 아쉬웠던 모습을 보인 프랑스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 은골로 캉테가 2년사이에 엄청난 성장을 한 것. 은골로 캉테의 성장은 프랑스 팀 전체의 활력을 불어 넣었다. 공격적 성향이 돋보이는 포그바가 뒤에 물오른 캉테가 있으니 맘 놓고 전진하게 되었고,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게 되었다. 캉테의 성장은 프랑스 대표팀 전체의 선순환을 가져왔다.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가보자. 전임 감독이었던 사베야를 내치고 삼파올리를 데려온 이유는 전술적 융통성 때문이었다. 물론 사베야는 명장이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다.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에게 프리롤을 부여하고, 수비가담이 좋은 아구에로를 스트라이크 이과인의 짝으로 기용했다. 전방의 이과인 역시 때에 따라선 수비적 역할을 지시했다. 팀 내에서 자유로운 플레이를 할 수 있는건 리오넬 메시가 유일했다. 가고, 마스체라노, 비글리아와 같은 수비적 역할을 잘 수행하는 선수들을 미드필더 진에 놓는 극단적 수비 전술을 펼쳤다. 이 전술이 4강전까지는 잘 먹혔으나 독일과의 결승전에서는 다소 아쉬웠다. 독일은 당시에 아르헨티나가 메시에 상당히 의존적이라는 사실을 잘 파악했고, 점유율을 바탕으로 메시를 고립시켰다. 결승전 까지 독일을 상대로 수비에 치중한 것이 패인으로 작용했다.


 삼파올리의 강점은 융통성이었다. 적어도 월드컵 이전까지는. 공격축구를 선호하나 수비를 포기하는 감독이 아니어서, 원톱 스트라이커의 활동량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최근 축구 감독 중 스트라이커의 활동량을 강조하지 않는 감독은 손에 꼽는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 삼파올리 감독은 기대했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전술적 고집만 부리고 끝나게 된다. 이상할 정도로 막시밀리아노 메사를 중용하고 파울로 디발라를 멀리 했다. 메시-메사 카드가 통하지 않는다면, 유벤투스에서 이미 검증을 받은 이과인-디발라 카드를 만져 볼만도 한데 두 선수는 삼파올리 감독 아래에서 경기에 많이 나서지 못했다. 전술이 통하지 않자 자연스레 역량이 부족한 수비진들에게 공이 자주 가고, 그나마 1인분은 해주던 오타멘디의 멘탈이 서서히 부서지게 되고 이해 할 수 없는 플레이가 이어지게 된다. 팀이 이렇다보니 소속팀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보인 윌리 카바예로도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그동안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내부의 문제까지 수면위로 올라왔다. 심지어 삼파올리가 메시에게 선수교체를 할지 말지에 대해 묻는 상황까지 치닫게 된다. 전형적으로 망하는 팀의 악순환을 보여주며 아르헨티나는 16강에서 탈락하게 된다.


 데샹은 증명했고, 삼파올리는 실패했다. 두 감독 모두 엔트리 발표때 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 삼파올리는 그 비판과 걱정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게 되었고, 데샹은 기막힌 반전을 만들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확고한 전술관이 있던 데샹은 자신의 꿈꾸던 축구를 완성 시켰으나, 삼파올리는 자신의 축구에 확신 없이 갈팡질팡하다 길을 잃었다. 자신이 축구가 통하지 않을 때, 데샹은 융통성을 보이며 빠르게 수정했으나, 삼파올리는 알 수 없는 고집을 부리며 안되는 축구를 계속 이어나갔다. 월드컵 이전의 두 감독에 대한 평판은 모두 좋았다. 하지만 지금 두 감독에 대한 평판은 천지차이다.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확고한 믿음, 실패 이후 빠른 수정, 융통성과 같은 부분에서 두 감독은 차이를 보였다. 자신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최고의 방법을 데샹 감독이 이번 월드컵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우승을 할지 혹은 아픔을 겪을지는 알 수 없으나 데샹의 성공과 증명은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될 것 만은 분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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