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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해야할 일을 제대로 못하면 혼난다. 학교에서 학생이 공부를 못하면 선생님한테 혼난다. 회사에서 일을 못하는 직원은 상사에게 혼난다. 우리는 사회에서 권리를 의무를 통해 얻는다. 학생에게 공부는 의무고 회사에서 일은 의무다. 내가 공부가 싫으면 학생이길 포기하면된다. 내가 일하기 싫으면 직원이기를 포기하면 된다. 학생이길 포기하더라도 이 세상엔 다양한 분야에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럴 자신이 있다면 학생이라는 직책을 버리고 어렸을 때 부터 새로운 길 찾으면 된다. 우린 그 길에서 새로운 의무와 권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의무와 권리는 하나의 동전과 같다. 의무라는 걸 지킨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앞서 말한대로 의무 수행이 잘 안되면 다른 사람에게 때론 혼날 수도 있는 법이다. 그 동전을 당신에게 준 사람이라면 의무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당신을 혼내는건 당연한 것이다.
이런 의무를 수행하게 만드는 힘은 바로 동전 뒷면에 있는 권리다. 우리는 회사에서 의무를 이행한 대가로 월급이라는 권리를 얻는다. 학생이라는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에게는 버스요금도 할인 받고, 그 수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나, 성인과 동등한 처벌 수준을 받지 않으며, 사적으로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툴을 공짜로 사용 하기도 한다.
의무의 무게와 권리의 무게가 동등하다고 느끼면, 우리는 그 동전을 가지면 되고 의무를 이행하기위해 노력하면서 권리의 달콤함을 맘껏 누리면 된다.
공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겐 이 동전의 주인이 국민이다. 물론, 모든 국민이 이 동전에 써있는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감시하기 어려우므로 국민들을 이를 위한 대리인을 세운다. 국회에서 자주보는 국정 감사도 공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의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행위다.
경찰도 결국엔 국민이 감시자다. 경찰은 국민이 국가의 의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우리가 얻는 권리다. 시민들은 국가에 세금이나 국방같은 의무를 지고, 우린 그에대한 권리로 안전을 얻는다. 그리고 국민에게 안전을 가져다 주는 사람들이 바로 경찰이다. 그렇기에 경찰에 대한 감시자는 바로 국민이다. 우린 경찰이 우리의 안전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얼마든지 그들을 혼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세금이라는 희생을 통해 얻은 권리다.
수많은 경찰관들의 희생을 통해 얻어지는 이 안전인 만큼 우린 감시자 행세를 하면서도 때론 생명을 담보로 움직이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해야 한다. 그래서 경찰관들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다. 절대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결국 경찰의 의무 권리 동전은 시민의 안전을 보호해야하는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얻는 권리는 일반 시민들은 절대 받을 수 없는 존경과 권위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따라서, 경찰관은 충분히 대우 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찰, 즉 시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경찰은 시민들로부터 비난을 받는게 당연하다. 이는 국민의 권리다.
대림동 여경 논란이 뜨겁다. 우선 현재 언론에 공개된 동영상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해당 영상 속 여경은 취객 한명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 채 주변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영상에서는 실제로 여경이 도움을 받았는지까지는 확인 안되는 것 같다. (하도 편집본이 많이 떠돌아 다녀서 추측으로 남겼다.) 하지만, 여경이 제대로 취객을 제압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고 남경이 취객을 제압했다는 것은.
만약 누군가가 그 여경을 도와줬다면 그건 아마 위험에 빠진 사람은 구해야 한다는 본능적이도 인도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경찰은 선이고 취객은 악이기에, 경찰은 도와준것은 선의에 의한 반응이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주변에 위험에 처한 인물은 그냥 넘길 수 없는 것, 구세군에 돈을 넣는 행위 와 같은 것이다.
자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다음 시민의 행동은 무엇일까? 그 경찰에 대한 문책이다. 그 경찰은 우리 시민에 대한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것이다. 이전 상황에서는 위험했으니까 도와줬다고 치자. 그러고 나서 상황은 해당 여자 경찰과 소속 경찰국의 문책이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이 사안은 국회 국정감사에 경찰청장을 출석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의 해당 여경에 대한 비난은 온당하고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이는 여자와 남자에 대한 성의 문제가 아닌 시민의 권리와 안전에 대한 문제다. 요즘 성갈등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성갈등과 전혀 상관 없는 대도 불구하고, 일부 여초 단체에서는 여경을 문책하는 시민들은 비난하고 이를 여성 혐오로 몰아가고 있다. 이 사건의 우리에게 주는 질문은 '과연 남자 경찰이라도 똑같이 비난 했을 것인가?' 가 아니라 '지금 경찰이 시민의 안전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이다.
경찰이 시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다면 우린 그 원인을 심도있게 고민해야 한다. 여경의 비율이 많아서 범죄자를 제대로 검거하지 못하느다는 명제가 논리적으로 맞다면 줄여야한다. 경찰이라는 조직은 성평등을 지향하는 조직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지향하는 조직이다. 물론, 국민의 안전을 지키면서 남성과 여성이 공존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다. 근데, 이게 불가능하다면 과감하게 포기해야한다. 성평등 역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지향점이다. 하지만, 이 지향점이 경찰력에 까지 작용될 이유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실제 사례로 미국의 몇몇 주정부의 경우 경찰관을 선별하는 테스트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등을 두지 않고 선발하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범죄자를 잘 검거하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을 뽑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발전을 위해서는 지금의 문제를 정확히 봐야 한다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조직들은 모두 도태되었다. 경찰관 한명이 취객 한명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해당 문제의 원인을 자꾸 흐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문제의 본질을 봐야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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