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 열풍
19세기 초 프랑스의 병사였던 니콜라 쇼뱅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그는 전쟁에서 17번이나 부상을 당하여 사지에 손상을 입었다. 불구가 되는 와중에도 그는 끝까지 복무하다 결국 의병제대 하였다. 그는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했지만 전역 후에도 나폴레옹을 열렬히 지지하였다. 나폴레옹이 실각한 뒤에도 다른이들은 나폴레옹을 비웃었지만, 그는 끝까지 나폴레옹을 신봉했다고 전해진다.
가상인물일 가능성이 매우 큰 니콜라 쇼뱅의 이야기는 연극연출가인 코냐르 형제의 작품 ‘삼색모표’에 의해 급속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쇼뱅은 맹목적인 국가주의의 상징처럼 퍼져나갔고, 그에 의해 ‘쇼비니즘(Chauvinism)’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쇼비니즘은 맹목적이고 호전적인 애국주의를 뜻한다. 쇼비니스트들은 국가에 대한 정당한 비판조차 반애국, 반사회적 행위로 간주하고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국가만이 절대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세계에 다시 국가주의의 바람이 불어온다. 그 촉매제는 당연히 도날드 트럼프의 당선이 가장 컸다. 트럼프의 선거구호는 ‘미국을 다시 한번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이었고, 이것이 미국 국민들에게 먹혀들어갔다. 또한, 우리나라의 주변국인 러시와와 중국은 예전부터 국가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푸틴은 대표적인 자국 중심의 정치를 펼치는 대표적인 정치인이고, 시진핑 역시 비슷한 노선을 밟고 있다.
국가 지도자가 국가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다만, 국가주의는 그 개념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 국가주의에서는 국가가 모든 행위에서 우선시 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이익은 후순위로 밀려날 가능성이 매우크다. 그래서, 국가주의와 파시즘은 정말 한 끗 차이이다. 국가주의 체제의 나라에서는 누군가가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도 정당화 되기 쉽상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당한 개인이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 이를 권력의 힘을 이용해 짖누르는 것이 바로 파시즘이다.
국가는 자국민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 국가도 결국 국민들이 모여서 만든 공동체이기 떄문이다. 국민이 중심이 된 국가주의는 자국민 보호, 국가의 손실 최소화가 기반이 되는것이다. 반면에, 잘못된 국가주의는 국가를 위한 정책 과정에서 자국민의 이익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타국에 배타적이 된다. 앞서 언급한대로 최근 몇몇 선진국들이 국가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동전을 던졌고, 이것이 앞면으로 떨어질지, 뒷면으로 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각국이 자국민 중심 정책이 부디 전쟁으로 이어지는 결과는 초래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