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Column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gyulee0220 2018. 3. 22. 12:29

in dubio pro reo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 27 4

 

  내가 이 문구를 참 좋아하게 된 계기는 어릴 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당시 매우 조용한 성격이었다그에 반해 당시 담임 선생님은 초등학교 교사 답지 않게 매우 무섭고 괄괄한 성격이셨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항상 학생들에게 어린이 신문을 한 부씩 나눠 주었다수업을 듣고 있던 중 선생님께서 사물함 위에 버려져 있는 신문을 발견하셨다. 화가 난 담임 선생님은 이 신문을 버린 학생이 누군지 찾기 시작했다담임 선생님은 신문을 모두 꺼내 보라고 하셨는데 미리 신문을 쓰레기통에 버린 나는 신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와 딴 한 친구만 신문이 하필 없었고, 둘 중에 한명이 자연스레 범인으로 몰렸다. 둘 중 누가 범인 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선생님께서는 두 학생 모두에게 체벌을 가했다. 내가 서울시 어린이 기자 출신이었는데 신문을 함부로 버렸겠냐고 설득해 봤자 다들 피식 웃고 말 것이다. 13살때에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남들한테 억울한 일은 당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선배들한테 혼날 때에도 꼭 내가 한 일이 아닌 경우에 대해 혼나게 되면 항상 한번씩 내가 한 일이 아니라고 따진다

 

  억울함 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서러운 지 모두들 잘 알고 있다. 이런 트라우마가 있던 나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억울함을 당하지 말라는 기본권이 보장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앞서 소개한 대한민국 헌법 제 27 4항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무죄로 태어난다.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법적인 의미에서의 무죄이다그러니깐 다른 사람들에게 너가 무죄임을 증명해봐!” 같은 헛소리는 제발 하지 말자. 피고인의 죄는 검사와 고발자가 머리를 맞대고 증거를 찾아가며 죄를 입증해야하는 것이다. 이 원칙이 우리 사회에서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무죄 추정의 원칙이다.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가 존재하는 이유다.

 

사법부를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상이 쥐고 있는 칼은 일반 시민들이 갖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그걸 함부로 휘두를 수는 없다. 프랑스 혁명 이후로 사법부의 칼을 시민들이 가져왔다면 그 칼을 휘두르려면 합의하에 휘둘러야 하는 것이고, 그 합의가 바로 사법 처리다. 칼을 맞아야 하는 범죄자가 존재 한다면, 고소장을 제출하고 혐의를 입증하고 우리가 같이 정한 법에 따라 판사가 이를 해석해 칼을 대리로 휘두르는 것이다. 그 과정 없이 일부 시민들이 맘대로 휘두르기 시작한다면, 사회는 혼란이 야기 될 것이고 그 결과가 바로 파시즘 정권이다. 사법부에 대한 조금씩의 불만을 다 있을 수 있다. 5천만 국민이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합의가 쉬울까? 그런데 요즘 언론을 통해 사람에 대한 사형 선고를 하고, 처벌을 가하기 시작한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의 99퍼센트 이상의 사람이라면, 모든 성범죄는 사라져야 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도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투 운동의 시작은 매우 참신 했고, 긍정적이었다.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고백하기 힘든 성범죄 피해 경험을 말하며, 우리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위로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쉬쉬하던 성희롱, 성폭력, 강간 문제를 공론화 했다는 점 또한 새로운 의의가 되었다. 폭로라는 수단으로 이 사회에 긴장감을 가져왔다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 이자 새로운 바람이었다.

 

문제는 폭로라는 점이다. 폭로에는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법이다. 폭로라는 수단으로 사람에게 처벌을 가하게 된다면, 무고한 피해자가 속출 할 것이다. 미투 운동이라는 좋은 바람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목적으로 활용하는 무리들이 간혹 보이기 시작한다. 진실 검증 없이 여론의 보도 하나로 사람들에게 성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히기 시작했다. 최근들어 익명의 미투 제보자가 점차 많아 지는 것도 이런 현상과 큰 연관이 있을 것이다. 성범죄자들에 대한 분노는 크게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런 문제를 해결한 훌륭한 제도인 법이 있다. 물론 법의 진입 장벽이 다소 높은 점과 성범죄라는 특수성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언론으로 선고하듯 범죄자로 낙인 찍는 행위는 분명 문제가 있다. 앞서 설명한 무죄추정의 원칙이 무시되고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일이 되버린다.

 

그리고 미투 운동은 여성운동이 하는 성범죄에 대한 운동이다. 이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미투운동의 창설자 였던, 타라나 버크가 한말이다.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폭로가 진실로 입증된 사람들에 한해 처벌을 가하자는 것으로 시작된 운동이다. 억울한 피고인을 만들면 안되는 것처럼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도 안된다. 그래서 이 점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폭로와 검증이 실시 되어야 한다. 성범죄를 방지하자는 취지의 운동을 마치 악성 페미니즘을 기반으로한 세력들이 그 안에 숨어 남성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는 진짜 억울한 여성 피해자들을 놓치게 만드는 암적 존재들이다.

 

자신이 던진 돌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한테 돌아올 수 있다는 것 항상 명심하자. 사법 처리중에 있는 피고인에 대한 신분을 언론에서 보호하는 이유도 그 사람이 좋아서 그러는게 아니라, 정말 범인인지 확정이 안되었기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이다. 명백해보이는 범죄라도 항상 신중하고,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증거와 알리바이를 모아 피고의 범죄를 입증하기 전까지 피고인의 신상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다. 증명되지 않은 폭로를 기반으로 그 사람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감행한다면, 그 방식이 나중엔 그대로 자신한테 적용 될 수 도 있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누군가를 폭로하고 아닌 게 밝혀진다면 아닌 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사회에 성범죄에 대해 환기 시켰으니 잘 된 거죠와 같은 논리를 펼치는 사람들도 있는데, 결국 이런 현상이 사람들로부터 미투 운동이 신뢰성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