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레닌,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린 사회주의 혁명가 - 2
10월 혁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레닌은 인민위원회를 창설하고 스스로 의장이 되었다. 외무장관에는 레프 트로츠키가 올랐고, 민족인민위원직은 스탈린이 맡게 되었다. 세계에 유래가 없었던 노동자국가의 탄생이었다. 혁명은 비교적 조용히 이뤄졌고, 많은 사상사가 발생되지 않은 평화적 혁명이었다.
그렇게 훗날 세계 초강대국으로 자리잡게 되는 노동자들의 국가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소비에트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며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 했다. 더이상 지속이 의미가 없던 독일과의 전쟁을 끝냈다. 혁명 기간동안 멈췄던 많은 기간 산업을 재작동시키며 국가가 다시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은행의 금리를 동결시키고 주요 기간 산업의 국유화를 선포했다. 레닌은 자신들의 친 노동자 정책이 시민들에게 충분히 어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1918년 총선거에서 레닌을 비롯한 볼셰비키 세력은 참패를 거둔다. 결국 레닌은 두마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제1당 사회혁명당을 없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레닌의 대숙청 작업이 실시된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니콜라이 2세가 결국 볼셰비키 보안 조직에 의해 암살당하게 된다. 레닌은 종교에 대한 자유를 거부하고 종교 재산을 전부 몰수했다.
러시아 적백내전의 시작
이런 급진적인 개혁은 자연스럽게 반대파들의 저항을 받게 된다. 결국 멘셰비키를 비롯해 볼셰비키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이 뭉치게 된다. 이들은 백색 깃발을 들었다해서 백군이라 칭했고, 트로츠키가 지휘하는 볼셰비키는 적군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이들의 전쟁이 바로 적백내전, 바로 러시아 내전이다. 농민의 지지를 받는 절대 다수의 백군은 빠른 속도로 적군을 위협했다. 수도였던 모스크바 근방까지 순식간에 도달했다. 하지만 레프 트로츠키의 뛰어난 전술과 레닌의 지도력으로 적군은 반격에 성공하고 결국 승리를 쟁취했다.
멘셰비키와 자유주의자가 한데 뭉친 백군은 뚜렷한 지도 세력이 없었다. 이들은 구체제로의 회귀만 주창했을뿐 시민들에게 설득이 될만한 사상적 기반이나 정책이 전혀 없었다. 초기에 백군에 가담했단 농민과 노동자들은 백군 지도세력의 무능함으로 점차 적군으로 돌아서게 된다. 레닌은 전시 공산주의를 토대로 국유화된 기간 산업을 적극적으로 전쟁에 활동해 백군에 맞설 명력을 모았다. 이 기간에 폴란드가 자신들의 세력 확장을 목적으로 러시아에 선전포고 했으나 큰 소득없이 물러나게 된다. 폴란드의 이러한 행동이 크게 분노한 러시아 사람들은 약 20여년 후에 이들에게 처참하게 복수를 당하게 된다.
레온 트로츠키
적백내전과 폴란드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레닌은 이제 국가 내부를 다지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는 1921년 신경제 정책을 실시했다. 소련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마르크스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선 자본주의에서 발달된 뛰어난 산업이 자리잡고 있어야 했지만, 오랜 기간 봉건제도를 채택한데다가 1차 대전으로 피폐해진 러시아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레닌은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소규모 사업 추진을 허용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고립적인 형태의 공산주의와는 많이 달랐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레닌은 자신의 사상을 양보하고 적극적인 타국과의 협력으로 상황 타계를 꿈꿨다.
1922년 레닌의 정책에 불만을 품은 일부 사람들에 의해 암살이 시도된다. 다행히 목숨은 부지한 레닌은 심각한 총상을 맞게 된다. 총상의 후유증과 과로로 인해 누적된 피로로 인해 레닌은 더이상 정상적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없게 된다. 심지어 니일혈 까지 일어나 병상에 눕게 된다. 그러던 1924년 1월 21일 세계 최초로 노동자 국가를 건설하고 러시아 제국을 전복시킨 레닌은 사망하게 된다. 당시 소련의 2인자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은 레프 트로츠키와 이오시프 스탈린이었다. 레닌은 스탈린은 그의 미치광이적인 기질을 보고 적합한 지도자라 판단하지 않아, 레프 트로츠키를 후계자로 지목했다. 문제는 이 예언이 스탈린에 의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결국 권력은 잡은 스탈린은 레프 트로츠키를 숙청하고 레닌은 신격화 하며 권력을 장악했다.
세차례의 혁명 시도와 세차례의 망명 생활 그리고 노동자 계급과 신 사회 구축을 위한 수없는 고민. 30여년간 쓰디쓴 실패를 맛본 블라디미르 레닌은 끝끝내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는 새로운 이상주의적 국가 건설에 성공하게 된다. 20세기 냉전 사회의 한 축을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그의 사회적 실험은 절반의 성공을 거둬 다른 국가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는 사상으로 지구의 절반을 정복한 유일 무이한 인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보존된 레닌의 시신
부조리를 혁파하고 사회 정의를 이룩한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 이 인물에 영향력이야 떠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러시아 뿐만 아니라 소련 공화국에 들어가게 되는 다른 나라들은 물론,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에도 그의 사상이 깊게 들어가게 된다. 그는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엄청난 고민을 했다. 망명 생활 도중에서 다양한 지식인들과 만나고 수많은 책을 집필했다. 20세기 사회주의 사상의 주류가 되는 레닌주의를 만든 장본인이다. 레닌은 일생을 노동자들의 권익이 보장되 다수가 행복한 사회를 꿈꿔왔다. 그가 사회 하층민들의 삶은 개선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 점은 분명하다. 심지어 자유주의 국가에서 태어난 알베르토 아인슈타인 역시 그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20세기 초의 러시아 제국은 국가가 보이는 최악의 모습들은 전부 갖추고 있었다. 무능한 황제의 연이은 실책이 이어졌다. 하층민의 삶은 피폐했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하루에 12시간 이상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이어갔다. 산업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때마침 발생한 대 기근은 농민과 노동자들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빵 한쪽이라도 떨어질까 황제에게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황제의 대답은 총알이었다. 레닌은 이런 러시아 제국의 모순에 분노 했고, 국민이 행복한 러시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성공했다. 레닌이 없었더라면 러시아 국민들의 고통은 더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깨고 국가가 정상적인 모습을 할 수있도록 바꿔 놓은 노력은 칭찬받을만하다.
레닌은 특히 대중을 선동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그의 당은 볼셰비키가 위기의 순간을 맞을때 마다 상황을 타계할 수 있었던 힘은 그의 선동능력이었다. 볼셰비키가 와해 위험일 때 대중앞에 나타나 세력을 결집시키고 혁명을 성공할 수 있도록 이뤄나간것이다. 그의 사상은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 없는 사람들은 레닌의 사상은 공상과 같은 느낌이 든다. 레닌은 자신의 어려운 사상을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하층민 노동자들에게 잘 이해시키며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뤄나갔다. 그의 사상에 있어서는 많은 사람들의 평가가 엇갈리지만 혁명 수행 능력에 있어서는 정말 세계 최고의 행동력을 지닌 지도자였다.
그리고 이 말은 그만큼 대중의 목소리를 잘 들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중의 지지 없이 혁명을 성공할 수 없다. 레닌은 대중의 요구를 누구보다 잘 캐치했다. 자신의 정적이었던 니콜리아 2세,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율리우스 마르토프와는 이 부분의 있어서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였다. 이들은 대중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 우유부단한 행동을 이어가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시민들의 요구사항 파악인 지도자의 기본적인 덕목이다.
그가 이룬 업적의 위대함과 그의 능력에 대해선 훌륭함이 설명이 되었다. 그는 충분히 한 나라를 이끌 만한 재능이 있었음은 입증되었다. 공산주의는 철저하게 망한 사상이다. 사상적인 문제는 다루기에 너무 민감한데다가 인물평도 아니기에 넘어가자.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그가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들이 훗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는가이다.
레닌의 사회는 생각만큼 폐쇄적이지 않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폐쇄적인 소련은 스탈린이 만든 것이다. 레닌은 신경제정책에서 많은 나라와의 협력을 꿈꿨다. 전후 사회 복구를 위해 다른 나라와 협조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산주의의와는 약간 다른 느낌이다. 물론 이 행동이 정말 망하기 직전이었던 러시아 문제를 타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한 개방 정책이었지만, 그가 절대 꽉막힌 지도자는 아니었다. 결국 망하기 직전의 러시아를 다시 끌어올린데에는 레닌의 역할이 매우 컷다. 레닌이 없었으면 제2의 초강대국 소련도 없었다. 패배의식에 짙었던 러시아-슬라브인들에게 다시 한번 그들이 강력한 국가를 세우고 세계무대에서 떵떵거리게 할 수 있게 만든 사람은 레닌이다. 그의 혁명은 위대한 러시아를 낳았다.
레닌의 저서, 제국주의 론
대중을 광기에 내몰고 참혹한 공상 사회를 만든 미치광이
그의 노력과 능력은 알겠는데, 그의 실험은 너무 위험했다. 부패한 제국을 무너뜨리고 레닌 사후 소련에 탄생한 사람은 또다른 미치광이 독재자 스탈린이다. 그가 세우려고 했던 노동자를 기반으로 한 이상적 사회는 스탈린에 의해 광기에 미쳐 날뛰는 대 숙청 독재 공산 사회라는 괴물을 낳았다. 의도는 좋았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부조리를 혁파하고 세운 국가가 새로운 독재체제다. 결국 이 스탈린이란 괴물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수많은 지식인과 자국민을 학살했다. 비밀경찰을 동원해 시민들을 감시하고 집회의 자유를 억압했다. 이 모습들이 레닌 이전의 니콜라이 2세하의 정치와 다른점이 무엇인가? 명확히 어느 부분이 시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한 것인가?
이렇게 세워진 노동자들의 이상 국가는 채 한세기도 가지 못하고 망하게 된다. 하층민과 시민이 중심이 되어 서로서로 열심히 일하는 아름다운 국가를 꿈꿨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안정에 안주하게 된 시민들은 더이상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혁명과 스탈린 시기에 위대한 소비에트를 만들기 위해 한데 뭉친 노동자들의 열의는 불과 몇십년만에 국가의 그늘 아래에서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기에 사람들의 의지를 빼앗아 갔다. 시민들은 더이상 일을 하지 않았다. 위대한 소비에트는 더이상 없었다. 레닌의 혁명이 위대한 러시아를 정말로 가져온 것일까? 즉, 레닌은 스탈린과 사회주의 붕괴에 있어 정말로 자유로운 인물인가?
레닌의 혁명은 너무 폭력적이고 급진적이다. 혁명 기간엔 다른 사상들에 비해 잘 정립되고 구체화되어있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승리는 레닌이 시민들에게 광기를 심어주었기에 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일생 동안 주장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무력 투쟁이 동반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그저 돈이 많다는 이유로 죄없는 부르주아 계층을 학살했다. 이는 분명한 역차별이고 옳지 못한 행위다. 아무리 결과가 좋을 지라도 잘못된 행동이 정당화 되는가? 어쩌면 마키아벨리즘은 레닌한테 더 어울리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는 단지 자신의 사상을 이룩하기 위해 죄없는 제국의 공무원, 부유한 상류층을 무력으로 죽였다. 노동자들은 레닌의 명령하에 돈많은 사업가들을 죽였다. 이들 중 노동자들을 학대하고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나쁜 사업가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 정당하게 노동자들을 고용한 선량한 사업가도 존재했다. 레닌의 혁명에는 이들을 따로 구분짓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이라 독재에선 사업가는 사회 악이다. 시민들은 레닌의 사상에 따라 자본가들을 죽였고,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무기가 쥐어지자 광기어린 사람들로 변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스탈린이 아니었다면 이런 광기어린 노동자들의 무질서한 폭력적 사회가 오랜기간 유지되었을지도 모른다.
레닌은 스탈린이라는 괴물을 낳았고, 시민들에게 광기를 심어주었다. 이렇게 많은 희생을 치르고 얻은 혁명의 가치가 과연 옳은 것일까? 이는 물론 가치관에 대한 문제이다. 자유를 우선으로 두는 사람은 레닌을 당연히 싫어 할 것이고, 사회주의 성향의 인물을은 레닌을 추종할 것이다. 한쪽이 무조건 옳은 방향은 없을 것이지만 한번 따져는 보자. 과연 레닌주의가 자유를 포기해도 좋을 만큼 가치있는 사상이었을지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대중들은 그리 똑똑하지 못하다. 인정하자. 우리같은 일반인들은 국가의 체제를 옳은방향으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사회 시간에 배우기는 하는데, 자유방임주의와 공산주의의 개념을 개괄적으로 알 뿐이지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 깊게 이해하지 못한다. 대중들이 볼때, 레닌주의든 마르크스주의든 다 거기서거기다. 지도자가 선택한 방향을 수동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다. 레닌은 어쩌면 대중들을 상대로 엄청난 사기를 벌인 희대의 사기꾼일지도 모른다. 레닌주의라는 허상속에 대중들을 가둬두고 자유주의 진영의 헛발질을 틈타 내전을 벌여 소련을 쟁취했다. 노동자들의 국가, 농민들의 국가라는 희대의 슬로건을 내세워 힘을 시민들에게 양도하는 척 실제로 하고 실제적으론 본인이 모든 권력을 쥔 꼴 벆에 더 되지 않는다. 그는 이 엄청난 사기에 성공해 광활한 러시아 영토의 새로운 주인으로 떠오른다. 결국 시민들의 판단력은 흐트러트리고 자유를 빼앗아 공산주의 거대국가를 만들어 냈다. 반대파를 척살하고, 자기 중심적 권력을 만들었다. 공산주의 실현을 위해선 거대한 중앙정부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빌미로 레닌은 시민들의 권력을 빼앗아 자기 손아귀에 넣었다. 니콜라이 2세와 블라디미르 레닌의 차이는 무엇인가?
소련 해체 당시 철거되는 레닌 동상
총평
블라디미르 레닌은 단순하다. 일평생 러시아 시민들을 위해 깊게 고민했고, 자기 희생적인 정신으로 시민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업적은 분명히 고평가를 받아야 한다. 러시아 제국에서 시민들의 피해는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황제라는 인간은 빵을 달라는 시민들에게 총알로 갚아주었다. 혁명이 시작되었을 때도 궁전에서 여유롭게 커피 마시고 있었던 인물이다. 시민들의 걱정은 눈꼽만큼도 안한 니콜라이 2세는 반드시 내 쫓아야 했다. 레닌은 사회주의 사상으로 러시아 제국 시민들은 한데 모았다. 만약 그의 사상이 없었더라면 러시아 제국의 시민들은 제대로 자신들의 힘을 모으지 못하고 중구난방식의 시위를 이어갔고, 러시아 제국의 존속기간이 더욱 길어 졌을 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성공에 있어 레닌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오래 가지 못했다. 불과 100년도 못가고 소련은 전복되었다. 중간에는 스탈린이라는 괴물이 나와서 수많은 시민들을 숙청했다. 그나마 소련이 연합국에 협력하여 존속기간이 오래 이어진 것이지 독소전쟁에서 패배했다면 소련의 멸망은 우리가 알던 것 보다 훨씬 앞당겨 졌을 것이고, 레닌은 소련의 국부가 아닌 러시아의 역적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사회주의 사상이라는 실패한 사상을 러시아에 주입 시켰고, 러시아는 또 한번 1980~90년대에 체제가 뒤바뀌는 혼란을 겪게 되었다.
레닌은 아직까지도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 중 하나다. 하지만 주로 많은 사람들의 평가하기론, 그의 러시아 혁명 성공은 칭찬하나 레닌주의라는 허상으로 시민들을 모았다는 것을 아쉬운 점으로 꼽는다. 무책임한 사상은 결국 스탈린이라는 괴물을 낳게 된 것이다. 지도자 한명의 위험한 사상이 이렇게 위험한 것이다.
오늘도 결국 똑같은 결론이다. 시민들이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지도자가 엇나가지 못한다.